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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y 14. 2021

사랑한다는 것은

유치환, '행복'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Happiness

       by You, Chi-whan    


It is happier to love

Than to be loved.     


Today, I write a letter to you

By the window of a post office

Which overlooks the emerald sky.  


Through the door leading to the street

People come, absorbed in their own thought,

To buy stamps or to get telegrams

And send their messages, sad, happy and sweet

To their hometowns or to those people they miss.     


Weathered and blown by the harsh wind of the world,

It may be a lingering bud of crimson poppy

In the bed of flowers leaning on each other and thickly flourishing,  

Bitter love between you and me.    


It is happier to love

Than to be loved.

Today I write a letter to you

Farewell, my love, good-bye.     


Perhaps this may be the last good-bye

But I was really happy to love you.     


사랑받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만 참으로 가슴 시린 고백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주는 것이죠. 역설적인 사랑의 방정식입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함으로써 행복해지는 것은 이 세상의 행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속의 정을 떠나 하늘이 허락한 사랑의 결실입니다.     


우체국에 들러 우표를 사고 당신에게 쓴 편지에 주소를 적습니다. 때론 이제 더 이상 알 수 없는 어딘가로 보내야 할 때도 있죠. 그럴 때는 가슴 저 아래서 치미는 그리움과 슬픔에 망연해집니다. 우체국 창밖으로 보이는 에메랄드 빛 하늘 위로 그 절절한 사연을 띄워 보내기도 합니다. 그대를 향한 내 사랑은 수많은 꽃으로 우거진 꽃밭에 아직도 남아있는 양귀비 꽃망울에 불과할지도 모르죠. 그 애처로운 미련을 어찌해야 할까요.     


이제 당신을 보내려 합니다. 가슴 아픈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 그대가 가는 곳 어딘지 알 수 없어도 저 하늘 아래일 것을 믿습니다. 안녕, 내 사랑, 안녕... 이제 알 것도 같습니다. 떠나는 당신을 결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음을. 하지만 이 마음만은 행복해야겠지요. 당신 없는 세상에 가슴에 품은 내 사랑을 행복으로 믿어야겠지요. 우체국 문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하늘은 좋겠습니다. 어디서든 그대를 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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