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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y 17. 2021

꿈을 낚는 어부

김동명, 밤

       김동명     


밤은,

푸른 안개에 싸인 호수

나는,

잠의 쪽배를 타고 꿈을 낚는 어부다.    


Night

       Kim, Dong-myong     


Night,

Is a lake surrounded by a blue mist.

I,

Am a fisherman catching a dream in a little boat of sleep.     


밤은 참 신기한 재주를 가졌다. 낮 동안 그토록 기운이 넘쳤던 사내를 한없이 외롭고 슬픈 고립 속에 빠뜨리고, 아름답고 상냥했던 여인의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하니 말이다. 이글거리던 한낮의 태양이 서산에 지고 어스름이 몰려오면 밤은 거대한 하늘 아래로 짙은 암흑을 뿌린다. 간혹 그 위로 소소한 달빛이 내려앉거나 별빛이 여기저기 반딧불처럼 명멸하면 흰머리 노인조차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애달픈 후회에 빠진다. 허 허... 밤은 느닷없이 덮쳐오는 회오리처럼 모두의 마음에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중년 여인의 헛헛한 미소 뒤로 소리 없이 다가선 밤은 그녀의 무르익은 아름다움을 왜 그리 처연하게 만드는지. 아기에게 젖을 물린 젊은 엄마의 가슴에는 왜 그리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사무치는지. 희미한 전등불이 밝히는 밤은 칠흑 같은 어둠보다도 더 희미하다. 한 남자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아내와 아이가 기다리는 단 칸 셋방으로 향할 때 밤은 어김없이 그의 그림자를 쫓는다.     


시는 밤을 호수라 한다. 푸른 안개가 피어오르는 을씨년스러운 물 위로 쪽배 하나가 흐르고 그 위에 시인은 어부가 되어 꿈을 건지고 있다. 그 스산한 호수에 부유하는 꿈은 그 얼마나 허망할까? 안갯속을 헤치고 물결 따라 흔들리는 작은 배 위에서 낚아 올린 꿈은 우리의 인생이다. 허허로운 세상사에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간신히 붙잡은 그 생의 꿈은 짙은 안갯속에 모습을 감추고 호수에 불어오는 바람에 흩어진다. 참으로 무의미의 생이요 꿈이다. 그 추상적인 삶의 여정이 밤하늘 아래 고인 호수와 안개, 그리고 작은 배 한 척과 어부와 꿈이라는 구체적 상징들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그래서 시는 회화가 되고, 그 그림 속의 시인은 다시 시를 채색한다. ‘잠의 쪽배’로는 건너지 못할 호수요 결코 낚아 올리지 못할 꿈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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