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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y 20. 2021

버려두었던 연극

나태주,  '관객을 위하여'

관객을 위하여

           나태주     


나는 늘 주인공이었다

아니, 주인공이고 싶었다

주인공이 아닐 때도 구경꾼이기를 거부하고

주인공이려고 노력했다

관객은 언제나 넘쳐났다

결혼을 한 뒤에는 우선 아내가 관객이었고

아이들이 관객이었다

한 번도 주인공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관객의 외로움이나 고달픔 같은 건

생각해 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건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 자라고 결혼도 하고

43년이나 타고 온 기나긴 교직 열차에서도 하차하려고 하나

내가 결코 끝까지 주인공일 수는 없는 일이구나

그동안 나 하나만의 일인극을 줄기차게 바라보아 준 사람들

그 누구보다도 아내의 고달픔이-외로움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되어진다

관객의 외로움, 그것이 이제는 내 몫으로 떨어지다니...

이 염치없음이여! 어이없음이여!

두려움이여!     


For My Audience

             by Na, Tae-joo  


I was always a hero.

Or I just wanted to be so.

Even when I was not a hero, I refused to be an on-looker.

Instead I tried to be a hero.

The audience were always everywhere.     

After a marriage, my wife was my audience.

So were my children.

Never did I think of

The loneliness and weariness of the audience

Who had to live on their hero.

I only took it for granted.     

Now my children grew up and got married.

And I am about to quit my 43-year teaching career,

Which makes me guess I cannot be a hero to the end

And how lonely and painful are those

Who have seen my mono-drama,

Especially my wife.

The loneliness of the audience, that falls on me now...

What a shame, what an emptiness!

What a fear this is!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느끼는 구식 남자의 느낌은 이렇듯 비슷한가 보다. 주인공이고 싶었던 삶, 그리고 그것을 묵묵히 지켜보아준 아내와 자식들. 평생을 지내온 일과 일터에서 멀어지는 그 아득함과 불안감, 그 모든 것이 평범한 한 남자의 무상한 세월이려니. 스물넷에 첫 강의를 했으니 가르치며 보낸 세월마저 마흔네 해, 어찌 이리 같은 것인지. 하지만 바빠서 무심히 보낸 시간 언저리에 날 바라보며 지켜주었던 그 관객들의 모습이 이제야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나의 인생에서 나는 늘 주인공이다. 그렇게 한 편의 드라마를 공연하는 것이 삶이지 않을까. 그 연극에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배우와 관객이다. 배우가 없는 연극은 텅 빈 무대일 뿐이고, 관객이 없는 연극은 리허설일 뿐이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이미 자기 연극의 주인공이거늘, 또 다른 인생을 만들어 그 연극의 주인공이 되려 한다. 그래서 첫 번째 연극에 기꺼이 참여한 자신의 관객들을 멀리하고, 모이지 않는 관객들만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원래부터 펼쳐졌던 나의 첫 번째 연극으로 돌아가려 한다. 무대도 작고 객석도 비좁다. 조명도 없고, 음악도 없고, 분장도 없는 연극. 하지만 그곳에는 나의 연극을 사랑하고 끝없는 연민의 눈길로 응시하는 나의 관객들이 있다. 그리고 잠시 접어두었던 나의 연기를 새로이 시작해야겠지. 외롭고 고단했던 나의 관객들을 위한 특별공연의 막을 올려야지. 그러면 부끄러움도, 공허함도, 두려움도 사라질 것이다. 나의 관객들을 위해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할 것이다. 내 인생의 첫 공연이자 마지막 공연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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