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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12. 2020

헛소동,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그들

셰익스피어 인문학: Much Ado about Nothing 

  사랑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울리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사랑이 아닐까? 셰익스피어는 남녀 간의 사랑을 매우 다양한 색채로 그려낸다. 열정적이고 슬픈 사랑, 의심과 질투로 얼룩진 사랑, 순결하고 지고지순한 사랑. 사랑은 어느 한 순간 우리의 가슴을 뚫고 들어와 마음 속 가득히 따듯한 온기를 전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허황한  쓸쓸함을 남기기도 한다.

  ‘헛소동’은 두 쌍의 남녀가 부르는 사랑의 노래이다. 수줍고 아름다운 헤로, 발랄하고 자유분방한 베아트리체, 그리고 두 아가씨와 사랑하게 될 클라우디오와 베네디크, 이 젊고 아름다운 연인들의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전개될까?

  헤로와 클라우디오의 사랑은 예정된 것이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 사랑을 느낀다. 그들의 사랑은 아주 우아하고 행복한 사랑이었다. 반대로 베아트리체와 베네디크는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 티격태격하는 사이였다. 서로에 대해 이성으로서의 관심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만나면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악담을 퍼붓곤 했다.

  이 사랑스런 연인들이 살고 있는 메시나를 방문한 또 한 사람이 아라곤의 왕자 돈 페드로였다. 그는 클라우디오와 헤로의 아름다운 사랑을 축복한다. 그리고 늘 서로를 비난하는  베아트리체와 베네디크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방법을 써야했다. 그 방법은 두 사람에게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었다. 돈 왕자와 클라우디오 그리고 헤라의 아버지 레오나토가 계책을 꾸민다. 베네디크가 홀로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세 사람이 짐짓 그를 보지 못한 듯 그의 근처로 다가가 대화를 나눈다. 당연히 그 대화의 내용은 베아트리체가 베네디크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편 헤로는 베아트리체를 상대로 작전을 펼친다. 하녀를 데리고 베아트리체 근처에서 베네디크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연 이것으로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될 수 있을까? 놀랍게도 꾸며진 이야기를 듣고 난 두 사람은 갑자기 상대방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마음 속 깊이 뭔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랑이 이렇게도 시작될 수 있는 것이었나? 상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상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생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고백하라. 상대가 내 마음을 아는 순간 마법처럼 사랑이 시작될지 모르니까.

  베아트리체와 베네디크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헤로와 클라우디오의 사랑은 남에 의해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들의 사랑에 금이 간 것은 돈 왕자의 이복동생인 존에 의한 것이었다. 그가 다른 여자를 헤로인 척 위장시켜 다른 남자와 만나는 장면을 연출해 클라우디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결국 결혼식 당일 클라우디오는 헤로의 부정을 폭로하며 그녀를 비난하고, 결혼식은 엉망이 된다. 남녀의 사랑이 잘못된 오해나 의심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에 대한 믿음 속에서만 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 대한 책임감이 사랑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결국 존의 계략과 악행이 드러나면서 모든 오해가 풀리고 헤로와 클라우디오는 다시 사랑을 회복한다. 거짓이 영원히 진실을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니까. 두 사람의 사랑은 상대를 믿고 그 믿음에 부응하는 것이야 말로 사랑을 지키는 첫걸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희극(comedy)은 그리스 술의 신 디오니서스의 시종인 새터(satyr―반은 인간, 반은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함)의 우스꽝스런 장난과 기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풍자극(satire)으로 불리는 것이 새터라는 말에서 기원한 것이니 희극에는 당연히 풍자적 요소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권력 있는 자들의 탐욕, 학식 있는 자들의 교만, 성직자들의 위선 등 풍자의 대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힘 있고 학식 있는 사람들이었다.

  ‘헛소동’은 사랑의 굳은 맹세가 하찮은 책략으로 무너지고 못된 왕자의 허세가 뜬구름 같음을 풍자한다. 세상사 모두가 뜻대로 되지 않는 헛소동에 불과한 것이다. 서로를 비난하고 조롱하던 두 남녀가 남들이 꾸며놓은 장난 같은 거짓말에 사랑에 빠지고 베네디크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기대어 사랑을 버리고, 오랜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결국 왁자지껄한 한 판 소동은 진실의 등장과 함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사실 전통적으로 희극은 비극에 비해 저급한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는 예술의 본질을 비극에서 찾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이었다. 그는 희극을 ‘속되고 저열한 행위의 가벼운 취급’이라고 말하면서 희극은 ‘평균 이하의 인간을 다루고, 인간의 약점과 단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 정의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연극은 가장 인기 있는 오락이었다. 계절마다 연극 축제가 벌어지고 관중들은 새로운 연극에 열광하였다. 특히 ‘시티 디오니시아’(City Dionysia)라는 축제가 가장 규모가 컸고, 오늘날 현존하는 대부분의 그리스 고전 연극은 이 축제를 위해 썼다고 한다.

  축제에 참가하는 극작가들은 세 편의 비극과 한 편의 희극을 제출해야 했는데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많은 그리스 연극들이 3부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유이다. 희극은 비극의 공연 사이에 ‘희극적 구제’(comic relief)를 위해 무대에 올리는 막간극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스의 희극은 ‘외설희극’이라 불릴 만큼 음담패설의 성적인 표현이 많았고, 심지어 전쟁에 반대하여 남편들과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인류 최초의 섹스 스트라이크까지 등장하니 2,500년 전의 고대인들이 오늘의 우리보다 성적으로 더 개방적이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결국 어리석고 단순한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행위로 웃음을 일으키고,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희극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희극이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줌으로써 사회적 유용성을 지닌다고 말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사랑의 완성, 남녀의 결합이 중심이 되는 낭만희극이다. ‘낭만’을 뜻하는 영어 단어 ‘romance’는 원래 ‘이야기’를 뜻하는 중세 문학의 한 형식(로망스)이었다. 주로 기사들의 충성, 전쟁, 죽음이 줄거리를 이루고 거기에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다시 말해 그 내용이 낭만적이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 희극에 등장하는 사랑의 이야기는 낭만적이다. 논리나 계산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흐름이 사랑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시련을 겪는다. 그래서 더욱 굳어지고 빛나는 사랑이 셰익스피어 희극의 정수를 이룬다. ‘헛소동’에 등장하는 헤로와 베아트리체, 클라우디오와 베네디크는 사랑하기 위해 창조된 인물들이다. 인간이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임을 알레고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녀의 결합에는 그 사랑을 맺어주는 사랑의 전도사가 있다. 돈 페드로 왕자가 그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대척점에는 언제나 시련과 고통을 야기하는 사랑의 훼방꾼이 있기 마련이다. 왕자의 이복동생 돈 존은 형과 형의 친구인 클라우디오를 미워한다. 그의 증오는 마침내 사랑의 파멸을 초래한다. 그러나 사랑은 늘 증오를 넘어서 승리한다. 그래서 돈 존의 계략은 궁극적인 사랑의 완성을 파괴하지 못한다.

  위대한 사랑의 승리를 그리고 있지만 ‘헛소동’은 남녀 간의 사랑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작품보다도 단순하지만 뚜렷하게 남자와 여자의 서로 다른 속성을 풍자한다.    

 

한숨짓지 마세요, 아가씨, 한숨짓지 마세요.

 남자는 언제나 사기꾼들;

 한 발은 바다에 담그고, 다른 한 발은 땅에 딛고 있지요,

 어느 것도 영원하지 않답니다.

                         (2막 3장)    

  남자의 사랑은 즉물적이고 강렬하지만, 언제나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을 만큼 취약하다. 하지만 여자의 사랑은 애처롭고 약하지만 영원할 수 있다는 것. 결국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인가. 계략에 속아 헤로를 비난했던 클라우디오와 절망에 빠진 헤로를 위로하며 돈 존의 악행을 밝혀내고 결국 헤로의 사랑을 지켜낸 베아트리체는 어리석은 남자와 현명한 여인이라는 셰익스피어 희극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한다.            


  헛소동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다. 헤로와 클라우디오, 베네디크와 베아트리체는 서로 다투고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오해로 슬퍼하는 아름답고 젊은 연인들이다. 베네디크는 말괄량이 베아트리체를 보며 결코 여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돈 페드로 왕자가 ‘사나운 황소라도 멍에를 견디어낸다고 말하며 사랑의 힘으로 서로의 고삐를 매는 것이 결혼’이라고 말하자 베네디크는 단호하게 외친다.        

         사나운 황소라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분별 있는 나

         베네디크가 그 멍에에 견디게 된다면, 황소의 뿔을 뽑아

         내 이마에 달아주세요. 그리고 나를 흉하게 그려서

         ‘여기 좋은 말 빌려 줌’이라고 쓸 때처럼 큰 글씨로  

         ‘여기 결혼한 베네디크가 있다.“고 써놓게 하십시오.

                                           (1막 1장)        

  베아트리체도 젊음의 오만함으로 남자라는 존재 자체를 조롱한다.      

         그런 사람을 뭐에 쓰나요? 제 옷을 입혀

         잔심부름이나 시킬까요? 수염이 난 남자라면

         젊지 않을 것이고, 수염이 없는 남자라면

         남자라 할 수 없지요. 젊지 않으면 내게

         어울리지 않을 것이고, 남자라 할 수 없는 남자도

         내게 맞지 않아요.

                                         (2막 1장)  

  이렇듯 상대에 대해,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던 두 남녀는 서로 사랑에 빠진다. 사랑은 결코 의지대로 오고가지 않는 법, 두 사람은 결국 사랑할 운명이었을 것이다. 베아트리체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베네디크의 마음에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싹튼다.     

         모두 그 여자가 미인이라고 하더군; 사실 그렇지.

         그건 입증할 수 있어. 그리고 정숙하다고 하지; 그도

         그렇지만 그야 내가 알 수 있는 일은 아니고; 현명하다고 하더군.

         내게 반해있다는 점만 빼면 그렇겠지; 맹세코 내게 반한 것이

         그녀의 총명함을 더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보라는 증거는 아니야.

         나도 그녀와 열렬히 사랑하게 될 것 같으니까.

                                     (2막 3장)          

  돈 페드로 왕자와 클라우디오가 사랑의 전령사들이었다면, 왕자의 이복동생 돈 존은 사랑의 파괴자이다. 그의 계략에 빠져 헤로의 정절을 의심하게 된 클라우디오가 절망에 빠져 외친다.    

         오 헤로! 당신의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의

         절반만이라도 당신의 생각, 당신의 마음속으로

         옮겨졌다면, 진정한 헤로 당신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이제 작별이요, 가장 추악하고 가장 아름다운 그대여, 안녕

         순결한 부정함, 부정한 순결함.

         당신 때문에 나는 모든 사랑의 문에 자물쇠를 걸어버리고,

         눈꺼풀에는 의심의 발을 내리고,

         모든 아름다움을 악의 상징으로 바꿔놓고 말았소.

         아름다움은 더 이상 정숙한 것이 아닐 테니.

                                   (4막 1장)          

  모든 오해가 돈 존의 계략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고, 자신의 냉담함으로 헤로가 죽었다고 오해한 클라우디오가 참회하며 그녀를 위한 조사를 읽는다. 어리석은 의심으로 사랑을 잃은 모든 사람의 참회록이다.    

         중상하는 혀로 죽임을 당한

         헤로가 이곳에 누워 있도다;

         거짓을 벗겨준 죽음은

         그녀에게 불멸의 명예를 가져다준다.

         치욕에 죽은 생명이

         죽어서 빛나는 명예 속에 살도다.

         노래를 그대의 묘지에 바치고

         말을 잃은 뒤에도 그대를 찬양하리.

                           (5막 3장)    

  사랑은 모두 이루어진다. 아무 것도 아닌 잠시의 소동이 지난 후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은 꽃을 피운다. 아! 젊음이여, 사랑이여 그리움이여!

    


  누구나 이성에 관한 한 이상형이 있다. 상대의 어떤 점이 당신을 매료시키는가? 베네디크의 이상형은 그야 말로 모든 면에서 최고인 여자이다. 당신은 이 여성의 미덕 가운데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기억하라. 당신에게 최고인 것이 다른 이에게도 최고는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짚신도 제 짝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첫째 부자이어야 할 것, 이건 확실한 조건이지; 다음은 총명해야지

         그렇지 않다면 소용없으니까; 정숙할 것, 아니면 평가도 안 되고;

         예뻐야지, 그렇지 않으면 봐줄 수도 없다고; 얌전치 않다면 근처에

         오지도 마라; 고상하지 않으면 천사라도 거절 하겠어; 말 잘하고,

         음악에도 능하고, 그리고 머리칼 색깔은

         그건 신의 뜻에 맡기지 뭐.

                                                    (2막 3장)    

  누군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기분일까? 말괄량이 아가씨 베아트리체도 베네디크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얘기를 훔쳐 듣고는 갑자기 사랑의 열정이 솟아오른다. 자신의 결점을 한탄하고, 그 남자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당신의 곁에 있는 누군가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사랑은 그렇게 헛소동처럼 다가오는 것임을 기억하라.      

         내 귀에 불이 난 것 같네. 정말일까?

         내가 오만하고 남을 깔본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건가?

         경멸은 이제 안녕이다! 처녀의 자존심도 아듀!

         그런 비난을 받으면서 영광을 누릴 수는 없지.

         베네디크 계속 사랑해줘요; 보답해 드릴게요.

         나의 거친 마음을 당신의 부드러운 손길에 길들이고;

         당신이 사랑해 주시면, 저의 마음도 당신을 따르겠어요.

         우리 두 사람의 사랑은 성스러운 띠로 묶이게 되겠죠.

                                         (3막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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