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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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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un 29. 2021

숲에 숨었던 거북이

거북이 가족이 피크닉을 떠났습니다. 준비한 음식을 바구니에 가득 넣고 그들이 정한 장소로 떠났죠. 먼 곳은 아니었어요. 고작 뒷동산으로 가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거북이 가족은 그곳에 도착하려면 아마도 석 달은 걸릴 겁니다. 알잖아요. 거북이걸음이 얼마나 느린지. 피크닉이 아니라 대장정이었다니까요.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해서 짐을 푸는데, 아 이를 어쩌죠. 그건 분명 대참사였습니다. 음식에 뿌릴 소금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싱거운 음식이 얼마나 맛이 없는지 거북이 가족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들은 비상 가족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집으로 돌아가 소금을 가져오자고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먼 길을 누구도 선뜻 떠나려 하지 않았죠. 시끄러운 논란 끝에 결국 막내 거북이가 다녀오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막내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습니다. 못 가겠다고요. 그 이유는 간단했어요. 자기가 집에 다녀올 동안 식구들이 피크닉 음식을 다 먹어버릴 거라고 의심했던 것이었어요.     


한참을 식구들이 설득하고 다짐한 끝에 막내 거북이는 툴툴거리며 집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식구들은 가져온 맛있는 음식들을 그저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죠. 그렇게 반년이 지나갔습니다. 떠났던 막내가 돌아올 시간이었죠. 하지만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막내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반년을 굶은 거북이 가족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음식 바구니를 풀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싱거운 음식을 소금 없이 먹기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음식을 펼쳐 놓고 있는데 갑자기 수풀 속에서 막내 거북이가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왔습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래서 내가 안 가려했던 거라고. 내 말 대로 결국은 나 없이 맛있는 음식을 먹어치울 작정이었잖아. 내가 저 수풀 속에서 꼬박 반년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제 음식 바구니를 풀었잖아! 내 생각이 옳았어.”

   


그래요. 막내 거북이가 옳았죠. 그가 오기 전에 식구들이 음식을 먹으려 했으니까요. 그런데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릴 참이었죠? 거북이 가족의 황당한 얘기지만 어쩐지 막내 거북이에게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나요? 우리는 서둘러 남의 행동을 예상하고 믿어버리죠.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예상대로 하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합니다. 그냥 자신의 일을 하면 되는데 다른 이가 내 생각대로 할 것이라는 서툰 판단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근거 없는 의심은 가슴에 적을 품고 사는 것이라 하죠. 있지도 않을 일에 대한 의심이 자신을 망치기도 합니다. 미국 만화가 피터 데이비드(Peter David)의 회상이 우리를 반성케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기쁨이 있었죠. 웃음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믿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자... 그 자리에 의심이 와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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