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벤치에 그리움을 앉히고
이지현
푸른 여름날에는 비어있는 벤치에
그리움을 앉히겠다.
세상은 꽉 차고 그리운 것 투성이어서
누군가 와서 앉기만 해도 그리움이 되리라.
바람이나, 가벼운 이파리 하나
슬쩍 빈자리에 앉았다 가도
풋풋한 그리움이 왔다 간 자리라 하겠다.
편지를 쓰지 않는 날이 점점 길어
주소를 잊어도 부끄럽지 않은 건
우리 사랑의 방식은 텅 빈 채로 두는 것.
말없이 비운 자리에 그리움을 앉히는 것.
여름은 오래 머물던 기억들이
시들지도 않고 푸르게 살아나는 시간.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속도도
강물처럼 느리게 흘러 뒤돌아보는 시간.
푸른 여름날의 벤치에는
푸르디푸른 그리움 하나만 앉혀두겠다.
그대가 왔을 때 아무도 없더라도
그리움만 외롭게 지나간 줄 알아라.
Seating a Yearning on an Empty Bench
Lee, Ji-hyun
In blue summer
I will seat a yearning on an empty bench.
As the world is filled with myriads of yearnings,
Somebody has only to sit there to be a yearning.
When a breeze or a fluttering leaf
Softly sits on an empty place and goes away,
I will see them as fresh yearnings.
Though many days pass with no letter written,
I don’t feel ashamed of forgetting the address.
Because our way of loving is to leave it empty.
To seat a yearning in a place left empty silently.
Summer is the time for our age-long memories
To be born again, fresh and unwithered.
As the time to ask after someone
Goes as slowly as the river,
We turn back.
On a blue summer bench
I will seat a deep-blue yearning only.
When you come and see no one there,
Just remember a lonely yearning goes away by itself.
여름날의 벤치는 가을의 그것보다 더 쓸쓸하다. 그 위에 낙엽조차 앉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파리 하나 잠시 올라앉았다가 지나는 바람에 쓸려 가면 그 빈자리에 그리움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이지현 시인의 시에는 그리움이 끈끈이 배어있다. 그 그리움은 때론 지난 사랑이었다가, 잊힌 꿈이었다가, 다시 새로운 기억에 대한 열망으로 바뀌곤 한다. 누구나 그렇다. 그래서 시는 보편적이어야 한다. 제 아무리 난해한 시도 결국에는 시인의 의식과 무관할 수 없고, 그로 인해 인간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은 쓰지 않는 편지로 치환되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굳이 잊힌 주소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 구체적 이미지는 사랑을 위해 비워놓은 마음의 자리로 이전하고 마침내 시들지 않은 옛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그렇게 천천히 우리는 그리움을 던져놓았던 그 시절을 향해 돌아선다. 그리고 시는 그리움이 앉았던 자리를 다시 비우고 돌아올 사랑을 기다린다. 그리워했음을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 위의 영문은 브런치 작가이신 이지현 시인님의 7월 29일 자 시, '빈 벤치에 그리움을 앉히고'를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