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 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A Sunflower Epitaph
Ham, Hyung-soo
Don’t raise a cold tombstone at my grave.
But plant the yellow sunflower around there.
And show me an endless barley field between its long stems.
Just think that the yellow sunflower is my love shining like the sun,
And that a skylark, seen to soar up to the sky, is my dream still flying high.
죽은 사람이 무슨 이름표가 필요하랴. 비석에 무슨 말 새긴 들 그 누가 기억이라도 하겠는가? 그러니 무거운 돌 세워 글자 새기는 수고는 무엇 때문에 하겠는가. 내 죽은 육신에 영혼이 남아 무덤가 산하를 돌아볼 수 있다면 차라리 노란색 해바라기가 좋으리. 일출과 일몰이 한꺼번에 이루어진 듯 그 붉은 노란빛이 무덤가를 비치면 아, 그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가! 저 멀리 푸릇하게 익어가는 보리밭이 영원처럼 펼쳐진다. 내 비록 몸은 이곳에 뉘었으나 청춘의 환희와 사랑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면 금빛 해바라기처럼 빛나리라. 하늘을 나는 노고지리의 우아한 선회처럼 이승의 꿈이 여전히 이곳에 있구나. 사랑하는 이여 내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 노란 해바라기와 보리밭 그리고 노고지리 보며 그때의 나를 잊지나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