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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16. 2021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I Don’t Know

          Han, Yong-un     


Whose trace is it, a leaf silently dropping from an empress tree

Picturing a vertical wave in the windless air?

Whose face is it, the blue sky half-seen through the cracks of

The black clouds driven by the west wind after a long, boring flood?       


Whose breath is it, the fragrance softly passing through the sky

Above the tower through the bluish moss on an old tree making no flower?

Whose song is it, a little winding brook whose origin is unknown,

Making small pebbles cry.     


Whose poem is it, the evening glow touching the endless sky,

Decorating the setting sun with its pretty hands, treading on the boundless sea with its lotus-like heels.     


Burnt ashes turn into oil again.

Whose night does the weak lamp protect, my ever-burning mind?          


한용운의 낭만적인 시입니다. 떨어지는 낙엽에서 누군가의 자취를 느끼고, 구름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하늘에 퍼지는 이끼의 내음을 통해 그의 숨결을 느낍니다. 재잘거리며 흐르는 개울에서 누군가의 노래를 듣고 자갈의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푸른 바다를 딛고 하늘에 번지는 저녁놀에서 시를 건져냅니다. 자연과 자아의 일치가 극에 달합니다. 자연 속의 모든 것은 그렇게 돌고 도는 순환의 과정을 거치죠. 시인은 타오르는 자신의 마음조차 누군가를 지키는 작은 등불이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위대한 시인의 고요한 외침입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자연과 나와 너의 찬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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