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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17. 2021

홀로 생명을 품은 여인

김혜순 : 판토마임 강사

판토마임 강사

           김혜순   


촉감 연습 시간이야

눈을 감고 열 손가락으로 빚어

만들고 느끼는 거야

자 지금 이 순간 시궁창으로부터

이것을 집어

올려 봐

그것을 두 손에

들어 네 품에 안았다고 상상해 봐

눈썹이 없는 아이

피돌기가 피부 밖에서도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아이

발은 있지만 발가락이 없는 아이

머리칼은 없고 손톱도 없는 아이

눈은 보일락말락 하고 입술도

있을락말락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늘귀보다 작은

콧구멍으로 숨을 쉬는 아이

배꼽으로 허겁지겁 먹는 아이

그리고

그리고 그 작은 아이를 이끌고 열 길

지옥으로 걸어드는 한 여자

네가 마다한

여인.    


A Pantomime Lecturer

                Kim, Hye-soon     


Time to practice tactile sensation.

Close your eyes, carve it with your fingers

And feel it.

Now from the drain

Take it

And lift it.

Imagine you hold it with your hands

 And embrace it in your breast.

A child with no eyebrows,

A child so transparent

That the stream of blood is seen outside its skin.

A child with feet, but with no toes

A child with neither hair nor fingertips

A child with its eyes and lips

Rarely seen.

A child, on a careful examination,

Seen to breathe with its nose smaller than the eye of a needle.

A child who devours with its navel.  

And

A woman who walks into the fathoms-deep hell

With that child too little.

And a woman

You abandon.     


세상 모든 동물들의 아기는 너무도 사랑스럽습니다. 강아지도 새끼 고양이도 왜 그리 마음을 찡하게 할 만큼 귀엽고 애처로울까요. 사랑하는 우리의 아기들은 더 말할 나위조차 없지요. 왜 아이와 어린 동물들은 맹수조차 사랑스러울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내맡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삶과 죽음, 애정과 학대, 굶주림과 안락함 모두를 오로지 우리에게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애잔한 마음이 그들에 대한 사랑을 더 크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시인이 그리고 있는 아이와 여인은 누구일까요? 발은 있으되 발가락은 없는 아이, 눈썹도 머리칼도 손톱도 아직은 생기지 않은 아이. 너무도 투명해 작은 몸속을 흐르는 피의 모습조차 선명한 그 소중한 생명의 태동. 아직 눈도 입술도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 그 원초의 생명체. 엄마의 탯줄에 의존해 숨 쉬고 먹고 마시는 그 작고 여린 생명의 씨앗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시인은 그 아름다운 생명을 품은 여인의 모습을 그렇듯 암울하게 그리고 있을까요? 왜 그녀를 불길 타오르는 지옥을 향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시 속의 그 녀는 ‘네가 마다한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홀로 생명을 품은 여인의 모습은 이 척박한 시기를 살아온 과거의 많은 어머니들을, 자신의 힘만으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이 시대 모든 싱글 맘에 대한 절절한 애틋함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지옥이라도 뛰어들 위대한 모성의 은유입니다. 위대한 어머니의 슬픔이 이 시의 뒤에 숨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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