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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16. 2021

나는 의자처럼

이창훈 : 의자

의자

      이창훈     


달리고 싶지 않다

다들 빠르게 걷고 뛰어도     


나는

지금 여기에 서 있거나

앉고 싶다    


꽃 피는 소리를 들으며

사랑의 시를 읽고

지는 꽃잎을 바라보며

오롯이 누군가의 발걸음을 떠올릴 것이다    


해가 뜨면

부드러운 햇살에 눈을 감을 것이고

해가 지면

어두워 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크게 뜨고 기다릴 것이다

별의 눈빛과 밤새도록 눈 맞출 것이다     


내 밖에서 모두 빠르게 달리고

내 밖에서 모두 바쁘게 움직여도

나는 꿈적하지 않을 것이다    


내 안으로 서서히 들어갈 것이다     


A Chair

      Lee, Chang-hoon    


I don't want to run.

All walking and running fast,    


I just want to stand  

Or sit here.     


Listening to the blooming flowers

Reading love poems

Watching falling petals

I will only recollect somebody’s footsteps.     


When the sun rises,

I will close my eyes in the soft sunlight.

When the sun sets,

I will look up at the darkening sky at night

And, with my eyes wide open, wait.

All night long I will look the stars in the eyes.     


All running fast outside of me,

All busily passing outside of me,

I will never move an inch.     


I will slowly come into me.     


모두가 바쁜 세상입니다. 한 순간도 변치 않는 것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냥 서있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게을리 앉아있기는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러고 싶습니다. 다들 바삐 걷고 뛸 때 나는 이 자리에 그대로 있고 싶습니다. 의자처럼.     


피어오르는 꽃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습니다. 떨어지는 꽃잎에 무상한 세월을 서러워합니다. 떠돌지 않고 한 곳에 머물며 부드러운 햇살을 느끼고 싶습니다. 밤이 되면 고개 들어 별들을 헤고 싶습니다. 눈 뜨고 언젠가 올 그것을 기다립니다. 밤새도록 별빛에 눈 맞추며 시를 짓습니다.     

에 무언가가 헐떡이며 뛰어갑니다. 서두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움직여선 안 됩니다. 끝까지 이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내가 갈 곳은 내 안의 그 깊은 곳뿐이니까요. 의자처럼 오늘도 난 이곳에 있습니다. 언젠가, 누군가 날 불러주겠지요.     


위의 영문은 삼석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브런치 작가 이창훈 시인의 작품(2021년 8월 15일 자)을 영어로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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