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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26. 2021

우연이 만든 발명

전자레인지

새로운 발명은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이 페니실린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연구하던 그는 우연히 배양기에 발생한 푸른곰팡이 주위가 무균상태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푸른곰팡이의 배양물을 800배로 희석해도 포도상 구균의 증식을 억제할 수 있음을 알아내고 이 물질을 페니실린이라 명명했던 것이죠. 20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는 학자 출신의 평범한 연구원일 뿐이었습니다. 그가 노벨상 수상자로 발표되었을 때, 일본에서 조차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다나카는 실험 도중 용기를 착각해 코발트와 글리세린을 섞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이 실수를 통해 레이저에 의해 파괴되는 단백질을 보호하는 완충제를 만들어냅니다. 그렇듯 우연은 새로운 발견의 시작일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전자레인지(microwave oven) 역시 의도된 발명품이 아니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스펜서 박사는 초단파를 발생시키는 마그네트론(magnetron)이라는 진공관을 시험하던 중 전혀 예기치 못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주머니 속에 든 막대사탕이 녹아내렸던 것이죠. 흥미를 느낀 박사는 옥수수 알갱이를 관 옆에 놓고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았습니다. 잠시 뒤 그는 튀겨진 팝콘이 사무실을 온통 뒤덮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음 날 아침 스펜서 박사는 동료 한 사람과 함께 마그네트론 옆에 달걀 하나를 두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달걀이 떨리고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뜨거운 내용물이 터져 나왔어요. 이것이 초단파를 이용한 전자레인지의 발명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새로운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초기 반응은 미온적인 것이었죠. 하지만 그러한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지속적인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향상되고 크기도 소형화되고, 가격도 내려갔습니다. 결국 1975년에 이르러서는 미국 내에서 전자레인지의 판매가 기존의 가스레인지를 압도하게 됩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것들은 관심과 노력을 거쳐 필연이 되는 것이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우연과 필연의 결과이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의 말입니다. 이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프랑스의 생화학자 자크 모노(Jacques Lucien Monod, 1910~1976)의 책 ‘우연과 필연’에서는 생명의 기원을 우연에 의한 것이라 말합니다. 그는 생명체를 이루는 기본구조 속에는 “오직 맹목적인 우연에 의해 아미노산 잔기(殘基)들이 서로 짝지어지는 놀이 이외에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우연의 축적에 의해 이루어진 생명이 하나의 질서를 이루는 것은 결국 필연입니다. 즉 미시적인 상황 속의 우연들이 합쳐져 결국 거시적인 차원의 필연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우리의 삶이 모두 그러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탄생 자체도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우연에서 비롯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한 개체로서의 삶이 필연적으로 이어지고 생명은 끝없이 연속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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