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Aug 23. 2021

사진만 남겨 놓은 아버지

임길택 : 아버지 걸으시는 길에,  아버지 사진

아버지 걸으시는 길을 

                   임길택     


빗물에 파인 자국 따라 

까만 물 흐르는 길을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골목길 돌고 돌아 산과 맞닿은 곳 

앉은뱅이 두 칸 방 우리 집까지 

하느님도 걸어오실까요     


한밤중, 

라면 두 개 싸들고 

막장까지 가야 하는 아버지 길에 

하느님은 정말로 함께 하실까요     


The Road Father Walks along 

                       Lim, Kil-taek     


Following the traces printed by the rain

God, too, walks along the road

Where black water flows?    


To our humble house with two bed rooms,

Which meets a mountain around the alley,

God, too, walks?    


At night

With two fried noodles for meals

Father walks into the coal face in a mine.

Will God, too, really be with him?         


아버지 사진 

         임길택     


아버지 사진만으로는 

우리 집이

채워지질 않아요    


병으로 누워계실 때만 해도 

아버지가

우리 집을 꽉 채우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그러나 지금 

아버지 사진만으로는 

우리 집이 

채워지질 않아요    


다른 친구들은 모를 

커다란 구멍이 

우리 집에 있어요

식구들 가슴마다 있어요     


Father’s Picture     


With father’s picture alone

Our house is

Never Filled.      


When he was sick in bed,

I never knew 

Father fully filled

Our house.      


But now

With father’s picture alone

Our house is 

Never filled.     


In our house 

There is a big hole

Friends never know.

In each heart of my family is it.     


오래 전에 떠나신 아버지가 생각나는 밤입니다. 브런치 작가 이창훈 시인의 글을 읽으며 임길택 시인의 시를 처음 보았습니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임 시인의 시 몇 편을 읽으며 나도 몰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나와 같은 시대를 공유하고 있었지만 나와는 다른 세상 속에서, 순수한 아이들의 눈빛 속에서 길지 않은 삶을 살다 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북의 탄광촌에서 어린아이들의 글을 모아 등사판으로 글 모음집을 만들며 행복해했을 그의 모습을 상상했습니다.     


그의 시 속 아버지는 탄광촌의 광부들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아버지였습니다.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위해 이른 새벽 신발 끈을 묶던 바로 그 아버지들이었습니다.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지고 저녁이면 하루의 고단함을 소주 한잔에 털어버렸던 그 가여운 아버지였습니다. 포기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터져 나오는 한탄을 애써 목구멍 뒤로 욱여넣었던 그들. 그 모든 아버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의 무거운 발걸음에 아이의 기원처럼 하느님은 함께 하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것은 그의 위안이 될 수 있었을까요? 이제 그 아버지는 곁에 없습니다. 사진만 덩그러니 남은 그 누추한 방구석에 그가 남긴 아내와 자식들이 그의 얼굴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뚫린 그 구멍은 언제나 메워질 수 있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여전히 그대로인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