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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24. 2021

"나를 기억해줘요!"

마종기 : 바람의 말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The Words of the Wind 

                  Ma, Jong-ki     


After all we go away,

When my soul passes by you

Please don’t think it’s the wind 

Waving the branches of a spring tree.      


I, today, plant a flower tree 

In a corner of the shadow of the earth

Where I knew you.

When the tree grows and blooms flowers,

All the sufferings which came after we knew each other

Will fly away as soft petals.      


Flying away like petals.

In fact, it’s unbearably vague and vain.

But how do we live 

Only by measuring with a ruler in sight?

When you often listen to the blowing wind, 

Don’t forget, my heart, even if you’re tired,

The words of the wind coming from afar.     


내 영혼이 당신 곁을 스칠 때, 당신은 나를 기억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날들을 살다가 서로가 서로를 떠나가면, 그저 나뭇잎 스치는 바람 한 줄기로 기억될 뿐일까요? 그래서 오늘 꽃씨를 뿌립니다. 당신을 알고 당신과 함께 했던 그 익숙한 공간 한 모퉁이에 기억의 씨앗을 심습니다. 언젠가 그 꽃씨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면 그때 더 이상 아픔은 없겠지요. 아니 잊혀졌겠지요. 마치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꽃잎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아득한 기억의 산등성이를 넘으며 허망한 그림자만을 남기겠죠. 아 견딜 수 없는 이 외로움을 어쩌지요? 하지만 세상 일이 다 그런 걸요. 이 짧은 만남의 삶에 어찌 영원을 기약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그대, 나의 심장, 나의 삶, 나의 영혼, 나의 행복과 불행이었던 그대여! 스치는 바람이 당신 귓전에 흩어질 때, 잊지 말고 귀 기울여주어요. 그 바람이 당신을 만지고 있음을. 그 바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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