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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26. 2021

나를 맬 곳이 없다

마경덕 : 말뚝

말뚝

      마경덕     


선착장 짠물에 얼룩진 쇠말뚝, 굵은 밧줄이 똬리를 틀고 말뚝의 목을 조이고 있다. 얼마나 많은 바다가 드나들었나. 끙차, 목에 밧줄을 휘감고 버틴 시간이 얼마인가. 투두둑 바다의 힘줄을 끊어먹은 말뚝 모가지가 수평선을 향해 늘어져있다.  


녹이 슨 밑동. 벌겋게 흘린 눈물자국이 지워지지 않는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 밧줄, 단숨에 바다를 둘러매던 그을린 팔뚝, 노을에 젖은 만선의 깃발, 말뚝에 마음을 묶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철썩, 포구가 몸을 뒤트는 순간 말뚝의 영혼이 새어나간다. 수많은 이별을 치르는 동안 말뚝의 심장은 차갑게 식었다.      


선창가 말뚝에 걸터앉아 떠난 사람을 생각한다. 말뚝 뽑힌 자리, 깊이 파였다. 나를 맬 곳이 없다.     


The Stake

          Ma, Kyong-duk    


An iron stake stained by salty water in a wharf is being strangled by a thick coiled rope. How many seas came in and out? Shit! How long has it endured being tied up by the rope? The necks of many stakes, which severed the sinews of the sea with a clattering sound stand in a line toward the horizon.     


Their rusty lower parts and reddish tearstains are never washed away. The rope that flied in describing a parabola, the sunburned arms seizing the sea at once, the flag of a fish-filled ship aglow with the setting sun, and those people tying their minds to the stakes... Where have all these gone? When the estuary twisted itself with a splash, the souls of the stakes drain out. After so many partings, their hearts got cold.        


Sitting on a stake in a pier, I think of those who have left. The places where the stakes are pulled out are dug deep. There is nothing for me to be tied to.  


나는 바다를 모른다. 도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마흔이 넘어 해변 도시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래도 난 여전히 바다를 모른다. 그저 날씨 따라 변하는 바다의 색깔에 감탄했을 뿐이었으니까. 선착장 말뚝에도 그리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고깃배를 흔드는 누런 바닷물에 눈살을 찌푸리기만 했다.     


시인은 고깃배를 잡고 있던, 밧줄로 목이 감긴 그 말뚝을 기억한다. 그 자리에 못 박혀 먼 수평선만 바라보고 있던 그 말뚝을 알고 있다. 시인은 그렇게 잊히고 버려진 무언가의 영혼을 되살린다. 녹슨 쇠말뚝의 지워지지 않는 눈물을 느끼고, 선착장에 난무하던 밧줄, 뱃사람들의 강인한 팔뚝, 석양 무렵 물고기를 가득 싣고 황금빛으로 빛나던 그 고깃배들, 그리고 그곳에 삶을 맡겼던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리워한다. 포구를 떠나고 돌아오던 그 수많은 배들과의 만남과 이별이 서러워 영혼마저 사라진 말뚝 위로 여전히 파도가 몰아칠 때면 그것은 그 자리에 서서 식어버린 심장을 붙잡고 침묵한다.     


시인은 모두가 떠난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말뚝 위에 걸터앉아 떠올린다. 가버린 사람들, 그리운 사람들, 스쳐갔던 그 모든 사람들을 마음으로 소리쳐 불러본다. 한 때 그 수많은 바다를 버텨왔던 말뚝이 쓰러진 자리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시인은 자신을 붙들고 묶을 또 다른 말뚝을 찾고 있는지. 그 선창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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