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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02. 2021

가난은 외로움 일지도...

신경림 : 가난한 사랑노래

가난한 사랑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은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법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A Poor Love Song 

     For a young man in the neighborhood

                                 Shin, Kyong-rim    


Don’t I know loneliness because I am poor? 

When I came back home after parting from you

The blue moonlight fell down on the snow-covered alley.

Don’t I have any fear because I am poor? 

The sounds of a clock striking two,

A night guard blowing a whistle, and a vendor selling buckwheat jelly

And the distant sound of the machine working when I wake up. 

Do I take away my yearning because I am poor?  

I endlessly repeat ‘I miss you, mom.’,

Recalling a red persimmon for magpies

And the sound of the passing wind.

But don’t I know love because I am poor? 

Your hot lips touching my cheeks

Your breath whispering ‘I love you, I love you.’

Your crying at my turning back.

Why don’t I know it because I am poor

That I have to abandon these all 

Just because I am poor?      


헤밍웨이는 젊은 시절 친구들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로 자기들을 감동시켜 보라는 요구에 앉은자리에서 이런 글을 썼답니다.     


“아기 신발 판매. 한 번도 신은 적 없음.”    


젊은 부부는 왜 아기의 신발을 팔려고 내놨을까? 그 신발은 왜 한 번도 신은 적이 없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면 가슴이 미어짐을 느낍니다. 아 가난... 순수한 영혼마저 파괴하는 그 지겨운 가난. 세상이 아무리 풍요로워져도 가난은 여전히 도처에 있습니다.  


가난은 참 불편한 것이죠.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망설이거나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가난한 부모는 늘 가슴 한편에 미안함과 죄책감을 달고 삽니다. 평생을 고생하신 부모님께 효도는커녕 걱정만 끼치는 가난한 가장은 제대로 어깨 한 번 펴지 못합니다. 다 내가 못나서, 무능하고 게을러서 그런 것이라고 자책합니다. 가난은 그렇게 슬픈 것일지도 모릅니다.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살라는 말도 좁은 월세 집에서 다 큰 아이들이 책상도 펴지 못하다 결국 밖으로 도는 모습을 보면 다 헛된 이야기로 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왜 나는 좀 더 욕심을 부리지 못했을까? 왜 좀 더 노력해서 남들처럼 대우도 받고 남에게 인심도 베풀며 살지 못했을까? 풍요로움 속에서 누리는 여유는 고사하고, 그저 숨이라도 제대로 쉬며 살고픈 사람의 어깨는 언제나 무거운 짐을 진 듯 쳐져있기 마련입니다.     


시인은 가난해도 외로움을 알고, 두려워하며 그리움을 버리지 않고, 사랑 역시 모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가난은 더 슬프지요. 차라리 그 모든 감정을 가난으로 대체하고 모든 걸 잊은 듯 살아가면 좋으련만... 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이니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것에서 벗어나기는 불가능한 모양입니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 돌아오던 새벽 두 시의 눈 쌓인 골목길, 야경꾼의 호각소리, 메밀묵 장사의 외침이 밤의 침묵을 깨고, 선잠으로 눈 비비며 일어난 아침은 또다시 공장의 기계 소리뿐. 여전히 그의 뜨거운 키스, 달뜬 사랑의 고백, 그리고 헤어지며 등 뒤로 들리던 그 흐느낌을 어찌 모르기야 하겠습니까. 그래도 가난한 그는 그 모든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과 사랑을 지워야 합니다. 그래야 덜 아프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이웃에 사는 그 가난한 청년의 여윈 얼굴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이 시간에도 잠들지 못하겠지요. 너무 외로워서... 가난은 외로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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