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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04. 2021

옷을 위한 만찬

사디, 페르시아의 위대한 시인

사디(Saadi, 1210~1291)는 중세 페르시아의 위대한 시인이자 산문작가였습니다. 페르시아 3대 시성(루미, 사디, 하페즈) 중의 한 사람이었던 그는 문장의 수려함과 더불어 도덕적, 철학적 사상의 깊이로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았지요.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그를 호머,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와 비견되는 위대한 문학가로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부스탄’(Bustan, 과수원)과 ‘굴리스탄’(Gulistan, 장미원)은 서양의 문학적 전통 속에서도 위대한 걸작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십자군 전쟁 때 포로로 잡혀 7년 간 노예 생활을 겪기도 했던 그였지만 시를 통해 인종과 종교를 넘어선 보편적 인간애를 그리고 있어 큰 감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들은 서로가 하나이니 

같은 뿌리에서 창조되었노라.

삶과 시절이 그중 하나를 아프게 하면 

다른 모든 이들도 같이 아픈 법.

다른 이들의 고통에 눈 감는다면 

인간이라 불릴 수 없을지니. 

(아담의 후예, 사디)    


이란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이 시는 유엔 본부의 한 건물에도 걸려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적절한 장소에 걸려있는 것이지요. 인류에 대한 사랑을 외치며 삶의 올바른 길을 실천적으로 설파하던 사디는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중 한 가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사디는 이란의 도시 시라즈의 위대한 시인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나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가난한 삶을 살고 있었죠. 어느 날 시라즈의 부유한 상인이 딸의 결혼식 날 도시의 큰 장사치들과 더불어 사디를 만찬에 초대했습니다. 사디는 그 초대에 기꺼이 응했어요.     


결혼식 당일 집주인과 그의 가족들은 문 앞에 나와 초대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부자들이 모두 참석한 듯 저택은 화려한 의상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였죠. 한편 사디는 누가 보아도 누추한 옷을 입고 문 앞 한 구석에 서서 누군가 자신을 안내해 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까이에 있던 집주인마저 그를 알아보지 못했죠. 한참을 기다리던 사디는 조용히 집 밖으로 나와 근처의 고급 옷가게를 찾아갔어요. 그는 그곳에서 가장 화려하고 값비싼 의상을 빌려 입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은 자신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멋졌습니다. 다시 부자의 집을 찾은 사디는 엄청난 환영을 받았지요. 얼굴도 못 알아보던 주인이 그를 얼싸안고 외쳤습니다.     


“오! 위대한 시인이 오셨군요.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요. 왜 이리 늦으셨나요. 우리 모두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아, 정말 멋진 차림이십니다. 선생이 안 오셨다면 오늘의 잔치는 빛을 잃고 말았을 겁니다. “    


두 팔을 벌려 환영한 부자 상인은 사디를 정중하게 만찬장으로 안내하고 정교한 장식이 달린 멋진 의자에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진수성찬이 은으로 만든 접시와 그릇에 담겨있었습니다. 식사가 시작되자 사디는 입고 있던 코트 자락을 벌려 그곳에 음식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주인이 소리쳤죠.     


“아니 선생. 무슨 일이십니까? 음식을 옷에 털어 넣으시다니요. 마치 옷에게 음식을 먹이시는 것 같소이다.”     

함께 자리한 부자들도 놀란 표정으로 사디를 응시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만찬장의 손님들을 돌아본 후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주인어른이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오히려 제가 놀랍군요. 남루한 옷을 입고 왔을 때는 저에게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 옷과 겉모습만이 아니었던 가요? 이렇게 화려한 옷을 입으니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환영을 받았지요. 오늘의 만찬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옷을 위한 것 같더군요. 그러니 이 진수성찬을 먹을 자격도 내 옷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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