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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03. 2021

양철집 할아버지

어느 날 밤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가출을 결심했어요. 어른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죠. 내게 자전거 하나 사줄 수 없는 부모라면 아들이 컴퓨터 기술자가 되는 꿈을 꿀 자격도 없는 거니까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난 아빠의 구두를 신고 나온 것도 몰랐어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빠의 지갑을 훔쳐가지고 나왔죠. 당장 돈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요. 그 지갑은 매우 낡았고, 그 안에는 서류처럼 보이는 낡은 쪽지도 몇 장 들어있었어요.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던 나는 무언가 발을 찌르는 것을 느꼈어요. 구두 안쪽이 매우 습해서 구두를 벗었죠. 밑창에 구멍이 나있더라고요. 늦은 시간이라 버스도 오지 않았어요.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나는 아버지의 지갑을 뒤져보았지요. 회사에서 가불 한 영수증과 얼마 전 아빠가 사준 내 노트북 영수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사의 매니저가 아빠에게 보낸 메모도 있었어요. 거기에는 좀 깨끗한 구두를 신고 출근하라는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아빠더러 제발 새 구두 한 켤레 사 신으라고 말하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아빠는 구두를 가리키며 적어도 6개월은 더 신을 수 있다며 웃으셨죠. 무언가 강하게 머리를 내려치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쪽지는 아빠의 낡은 스쿠터를 새 자전거와 바꾸는 교환증이었어요. 집을 나올 때 아빠의 스쿠터가 보이지 않았던 기억이 스쳤습니다. 나는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어요. 미친 듯이 소리치며 울고 싶었습니다. 나는 발에 상처가 난 것도 잊은 채 집으로 달려갔죠. 아빠도 스쿠터도 보이지 않았어요. 난 또다시 달려갔죠. 자전거 파는 곳에 도착해서야 그곳에 계신 아빠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빠를 보는 순간 나는 너무도 슬펐습니다. 달려가서 아빠를 꼭 껴안고 소리치며 울었습니다. “아빠 나 자전거 없어도 돼!!!”    


상황은 각자 다르겠지만 부모님들은 우리를 그렇게 키우셨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우리를 사랑하셨고,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부모님의 고마움을 깨닫게 될 때 이미 그분들은 우리 곁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그랬거든요. 이제 나이가 들어 돌아보니 참 철없던 젊은 시절이었어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세상에는 많지요. 요즘 ‘꼰대’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예전부터 쓰던 말인데 요즘 자주 듣게 되네요.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의 고집과 편견과 위선이 싫은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젊었을 때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아직 젊어서 모르는 것도 많은 거예요. 꼰대들에게 배워야 하는 것도 있는 거죠. 이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고 싶으면 함께 노력해야지 서로를 불신하고 경멸해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룰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꼰대님들! 왜 그리 자신이 없어지셨나요? 꼰대 소리 들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납니까? 속으로 철없는 젊은 사람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왜 그리 자신을 속이며 삽니까? 제 기억 속에는 양철집 호랑이 할아버지가 남아있습니다. 골목에서 조금만 시끄럽게 해도 나와서 호통 치던 그 할아버지는 가끔 호주머니에서 눈깔사탕을 꺼내 주시기도 했었죠. 당당하게 삽시다. 어차피 나이 들면 다 꼰대가 되는 건데 숨기려 해서 어디 숨겨지나요? 젊은이들에게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가르쳐야지 아이들 비난이 두려워 숨으려고만 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젊은이들도 부모가 자기를 어떻게 키웠는지 알아야죠.  집안에도 나라에도 어른은 필요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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