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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15. 2021

빈 하늘에 걸린 등불

김광균 : 와사등

와사등

     김광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홀로 어델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여름 해 황망히 날개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선 거리의 아우성 소래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느린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A Gas Lamp

             Kim, Kwang-kyun      


Stop-a lamp is hanging in the empty sky,

A sad sign telling me to go somewhere alone.    


The long-summer sun, hurriedly folding up its wings,

Soaked in the twilight like high tombstones in a line,

Entangled like overgrown weeds in the colorful night view,

Remains silent like a dummy.      


When darkness spreads outside of skin

And the roaring sounds are heard around strange streets,

I am in tears without any reason.     


Joining an empty parade of the crowds

I am carrying a heavy burden of sorrow somewhere,

Casting a long, slow shadow, so dark.     


A sad sign tells me to go somewhere.

Stop-a lamp is hanging in the empty sky.      


빈 하늘에 걸린 등불 하나... 그것은 마치 신호등의 붉은빛처럼 발길을 멈춰 세운다. 가로등 켜진 거리의 한가운데에서 도시의 우리는 간혹 차단되어 멈춰 선 채 길을 잃는다. 긴 여름을 보내고 문득 스산한 바람에 전율하던 보도 위의 나그네는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에서 무기력하게 말을 잊는다. 사위는 어둠에 묻히고 어딘지 모를 길 위에서 들려오는 단말마. 뭉크의 그림 속 사내처럼 절규하는 마음속에 눈물이 끓어 넘친다. 유령처럼 흰 가면을 쓴 군중들에 휩쓸려 이리저리 헤매던 나그네의 긴 그림자는 왜 그리 슬픔에 겨운지. 어디로 가야 하나. 다시 차단되어 멈춰 선다. 어디로 가야 하나. 거리의 외로운 사람들은 갈 곳 모르고 헤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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