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균 : 와사등
와사등
김광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홀로 어델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여름 해 황망히 날개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
사념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선 거리의 아우성 소래
까닭도 없이 눈물겹고나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느린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기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A Gas Lamp
Kim, Kwang-kyun
Stop-a lamp is hanging in the empty sky,
A sad sign telling me to go somewhere alone.
The long-summer sun, hurriedly folding up its wings,
Soaked in the twilight like high tombstones in a line,
Entangled like overgrown weeds in the colorful night view,
Remains silent like a dummy.
When darkness spreads outside of skin
And the roaring sounds are heard around strange streets,
I am in tears without any reason.
Joining an empty parade of the crowds
I am carrying a heavy burden of sorrow somewhere,
Casting a long, slow shadow, so dark.
A sad sign tells me to go somewhere.
Stop-a lamp is hanging in the empty sky.
빈 하늘에 걸린 등불 하나... 그것은 마치 신호등의 붉은빛처럼 발길을 멈춰 세운다. 가로등 켜진 거리의 한가운데에서 도시의 우리는 간혹 차단되어 멈춰 선 채 길을 잃는다. 긴 여름을 보내고 문득 스산한 바람에 전율하던 보도 위의 나그네는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에서 무기력하게 말을 잊는다. 사위는 어둠에 묻히고 어딘지 모를 길 위에서 들려오는 단말마. 뭉크의 그림 속 사내처럼 절규하는 마음속에 눈물이 끓어 넘친다. 유령처럼 흰 가면을 쓴 군중들에 휩쓸려 이리저리 헤매던 나그네의 긴 그림자는 왜 그리 슬픔에 겨운지. 어디로 가야 하나. 다시 차단되어 멈춰 선다. 어디로 가야 하나. 거리의 외로운 사람들은 갈 곳 모르고 헤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