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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17. 2021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Jealousy is My Power 

                Ki, Hyung-do     


After many years have passed,

This paper will fall from between the fragile leaves of a book.

That time in my mind, too many factories had been built

‘Cause there were so many things to foolishly write. 

Like a dog slowly straying under the cloud, 

In the air, I tirelessly strolled about. 

With nothing but a sigh,

I absently stood my youth on every evening street

And reckoned my days passed, 

Then, I found nobody cared about me too much.

Now, what is left in my hope is only jealousy. 

Therefore, I hereby leave a short writing. 

My life has been madly searching for love,

But I have never, ever, loved myself.  


시인은 종이에 글을 씁니다. 그리고 낡은 책갈피 사이에 끼웁니다. 언젠가 그 글은 헤어진 책장을 비집고 나오겠죠. 시인의 글 속 마음은 그때도 지금과 같을까요? 이런저런 생각의 조각들을 무차별적으로 적어댔던 시인의 치기도 그때엔 조금 차분해질지 모르겠습니다. 혹은 그 상념의 기록들이 가을 낙엽처럼 흩날리는 것을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어느덧 청춘을 지낸 모양입니다. 스물의 끄트머리는 여전히 청춘 이건만 어찌 이 젊은 시인은 벌써 청춘을 세워두고 지난날을 헤아리는 것일까요? 누구에게도 강렬할 수 없었던 그의 짧은 생애는 그에게만 그토록 길고 많은 고통의 날들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희망은 온통 질투뿐입니다. 세상의 무수한 말과 글을 시기하였습니다. 여전히 청춘을 끌고 배회하는 호기로운 젊음을 질투했습니다. 찾을 수 없는 사랑을 찾아 헤매는 부조리의 청춘만을 뒤에 남기고 시인은 여전히 글을 씁니다. 한 번은 자신을 사랑하리라 다짐하는 순간 그는 영화관 스크린 속 아름다운 청춘과 사랑을 질투하며 눈을 감습니다. 그렇게 질투는 아름다운 시인, 그의 힘이었고, 후회였고 아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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