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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Sep 26. 2021

긍정의 이율배반

최영미 : 이율배반

이율배반

          최영미     


언젠가 난 간절히 빌었었다

이 비가 그냥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니기를    


언제부터인가 난 또 빌었다

이 비가 제발, 그냥 지나가는 소나기이기를    


언제가, 언제부터인가

비 오는 밤이면 난 노래를 주물렀다

형벌의 낮과 밤을 반죽해 은유의 가락을 뽑았다    


이 비가 그냥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니길

이 비가, 제발, 그냥 지나가는 소나기였으면    


Antinomy

        Choi, Young-mi     


Once I earnestly prayed

This rain might be anything but a passing shower.     


I don’t know when but I prayed again

This rain might only be a passing shower.     


I don’t know when and how long

But I have fumbled with a song every rainy night

And molded the night and day of punishment into a tune of metaphor.     


May this rain not be a passing shower,

May this rain only be a passing shower.     


삶은 이율배반의 연속입니다. 사랑은 증오가 되고, 믿음은 불신이, 행운은 불행이 됩니다. 삶조차 죽음이 되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바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우리의 간절한 희망은 어느 순간 털어버리고 싶은 무거운 짊일 뿐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무언가가 절실한 소망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모순으로 지어진 비대칭의 성(城) 일지도 모릅니다. 시작과 끝이 다른 노래일지 모릅니다. 형벌처럼 이어지는 무수한 날들도 아침은 필연적으로 밤이 됩니다. 메마른 가슴에 뿌리는 소나기를 갈구하다가도 문득 그것을 보내고 구름 사이로 내비치는 해를 간절히 원하기도 하는 것이죠. 그러니 그 이율배반의 세월 속에서 우리는 노래합니다. 모순의 은유로 가득 찬 노래지요. 하지만 길을 잃을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오늘의 고통이 내일의 기쁨으로 바뀌는 긍정의 이율배반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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