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Nov 06. 2021

술 마시는 이유

강태민 : 내가 술을 마시는 건

내가 술을 마시는 건

                  강태민     


내가 술을 마시는 건 꼭 취하고 싶어 마시는 술 아니다.

허무한 세상

땀 흘려 얻은 울분을

허기진 뱃가죽 공복에 씻어내려고 마시는 술만도 아니다.     


남자의 고독을 술 한 잔에 섞었다 말하지 말아라.

나 홀로 술잔 기울인다고 술꾼이라 말하지도 말아라.

내 빈 술잔에 아무도, 무엇 따르는 이 없는 걸 너희가 아느냐.     


내가 말없이 술잔 비우는 건

윤회를 꿈꾸는 세월에 주먹을 치며 나를 달래는 일이다.

내 가슴 일부를 누구 스친 바 없는 시간에 미리 섞는 일이다.

허기진 공복에 잔을 씻고 씻으며

미지의 시간을 위로해주려는 그런 마음이란 말이다.     


I Drink because

             Kang, Tae-min    


I drink not because I want to get drunk.

I drink not to wash down

Hard-earned anger in this futile world

Through my hungry stomach.     


Don’t say that a man’s solitude is mixed in a glass of wine.

Don’t say that I am a drunk because I drink by myself.

Do you know there is no one who fills my empty glass?     


To drain my glass silently,

It soothes me with the fists in the dreamy cycle of life,

Drinking is mixing part of my heart with untouched time.

Washing the glass over and over in my hungry stomach,

I drink to console the unknown time.      


술은 인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음식의 하나일지 모릅니다. 경제학 원론 시간에 읽은 ‘매춘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이다.’라는 구절을 빌려 본 말이지만 술과 성(性)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나 본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것이지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시대착오적이기는 하지만 옛 시절에 영웅(남성)은 호색(好色), 호주(好酒)한다는 말도 있었죠. 요즘은 여성들도 술을 많이 마셔서 더 이상 술이 남성들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불이라고 합니다. 불의 발명으로 음식을 익혀먹게 된 까닭에 질기고 딱딱한 것을 먹기 위해 발달했던 턱의 근육이 두뇌의 발달로 이어져 오늘날의 인류 문명이 가능해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술이 어떤 연원에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지만 호주가들은 술의 발명이 불의 발명만큼이나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강태민 시인의 시는 술을 마시는 이유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각박한 삶의 현실을 잊기 위해 취하려는 것도 아니요, 메마른 세상에 대한 울분을 삭이려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한 고독을 이기려 술잔을 드는 것도 아니라고 하지요. 곁에 술 한 잔 따라주는 이 없는 것이 우리네 외로운 삶이니까요. 시인은 술을 마시는 것은 나를 달래는 일이라 합니다. 이승에서의 삶이 너무 적막해 윤회를 꿈꾸며 고통 속에서 나를 달래는 것이라 말합니다. 아무도 위로하지 않는 외로운 마음이 애달퍼 다가올 시간을 위해 술잔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그 알 수 없는 미래를 위로하기 위해 시인은 술을 마십니다.     


그런데 시인의 술 마시는 이유는 너무 피상적이고 모호하게 들립니다. 윤회의 끝에는 외로움이 덜 할까요? 분노와 고독마저 달래질 수 있을까요? 강 시인이 들으면 나의 무지와 경박한 상상력을 탓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시인이 술을 마시는 이유가 반어법으로 던진 일 연(聯)과 이 연의 두 연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울분’과 ‘고독’ 속에서 그저 취하고 싶다는 말처럼 들리니 말입니다. 너무 세속적이고 단순한가요? 하지만 그 두 가지 감정 속에 사는 인생이 어떤 미래를 꿈꾸겠습니까? 앞의 두 연이 없다면 마지막 연도 무의미해질 것 같습니다. ‘시를 쓸 때는 시인과 신(神)만이 그 뜻을 알지만, 쓰고 난 뒤에는 신만이 안다.’라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그러니 시인도 신도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는 자신만의 해석이 다소 우습고 경박해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까뮈의 글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병영(兵營)에 이런 표어가 붙었다.

“알코올은 인간의 불을 끄고, 그 동물에 불을 붙인다. “

이것을 읽으면 사람이 왜 알코올을 사랑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술을 마시면 인간성은 사라지고, 내면의 동물적 본능이 살아난다는 말이겠죠. 간혹 술을 마시고 심하게 주사를 부리는 사람에게 ‘짐승 같다.’고 비난합니다. 이성을 잃고 인간이 지녀야 할 올바른 처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병영에 붙은 표어는 젊은 병사들에게 술의 해악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까뮈의 마지막 말이 흥미롭습니다. ‘인간의 불을 끄고, 동물에 불을 붙이는 것’이 사람들이 술을 사랑하는 이유라는 것이죠.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사회라는 감옥에 갇혀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본능적인 욕망과 바람이 규범과 규율이라는 사슬에 얽매어 있죠. 그들은 술을 통해 억눌린 동물적 본능을 풀어놓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사람다움을 강요당한 가련한 인간들이 술을 통해 자신 속에 갇힌 짐승으로 변하고 싶은 것이죠. 술을 깨면 후회할 그 많은 일탈의 순간 속에서 인간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술이 풀어놓은 그 동물이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파괴하는지를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깊은 밤,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