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무엇일까? 언젠가 읽었던 미국 소설 속 선생님의 질문이었습니다. 학생들의 설왕설래에 여전히 선생님은 옅은 미소만 짓고 있었죠. 그때 한 학생이 조용히 손을 들었습니다. “바퀴입니다.” 선생님은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맞아!”
어떤 이는 '불'이 인류 최고의 발명이라 합니다. 물론이죠. '바퀴''가 동력(power)의 발전에 획기적인 역할을 하였다면 불이야 말로 인간을 동물의 수준에서 이끌어 인간답게 만든 놀라운 발명품이었습니다. 말과 글도 인간을 동물과 구분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그렇게 시대에 따라, 인류의 탄생 이후 매 시기마다 인간은 자신들만의 발명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원자’의 발견으로 모든 것은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핵의 발명은 인류에게 새롭고 무한한 에너지를 가져다주었지만 또 하나의 멸망의 이유를 첨가하였지요.
인류의 수많은 발명품 가운데 인쇄술은 전혀 다른 차원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언어로 써진 수많은 책들을 가능케 했으니까요. 인쇄술 이전의 책들은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는 손으로 필사를 해야 했습니다. 몇 날 몇 달을 애써야 겨우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질 수 있었지요. 인쇄술은 인간에게 지식의 공유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교육의 기회를 무한대로 확대하기도 했지요. 그러한 지식의 공유와 지식이 확산이 오늘날 인류의 문화와 문명을 가능케 했던 것입니다.
윌리엄 캑스턴
인쇄술과 관련해 영문학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 윌리엄 캑스턴(William Caxton, 1422~1492)이다. 그는 영국 최초의 인쇄업자였으며 번역가였고 외국 서적의 수입업자이기도 했다. 캑스턴이 활동했던 시기의 영국은 넓은 의미에서 확문의 부흥이 이루어지던 때였다.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가 치던 15세기와 16세기 전반은 영국이 변화 속에서 서서히 국력을 축적해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프랑스와의 백년전쟁과 영국 내부의 왕권 다툼이던 장미전쟁의 와중에 있었으나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르네상스의 발화와 더불어 그리스-로마의 고전에 대한 학문적 탐구가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1467년 캑스턴이 인쇄술을 처음 도입하였고, 유럽 최고의 인문 학자였던 네덜란드의 에라스뮈스(Erasmus)가 영국에 와서 친구인 토마스 무어(Thomas Moore)의 ‘유토피아’(Utopia, 1516) 저술에 영감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또한 틴스데일(William Tynsdale, 1494~1536)이 신약성서를 영어로 번역하였고 말로리 경(Sir Thomas Malory)이 로망스 ‘아서의 죽음’(Le Morte d'Arthur)을 쓴 것도 이 시기였다.
캑스턴은 1422년 영국의 켄트 주에서 태어났다. 16세에 런던으로 올라가 상인의 도제가 되었고 이후에는 양모 무역의 중심지였던 벨기에의 브뤼허(Bruges)로 이주해 그곳에서 상인으로 성공을 거둔다. 1462년에서 1470년까지는 영국 상인협회를 이끌었고, 국왕을 위한 외교관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캑스턴은 영국 왕 에드워드 6세의 누이이자 프랑스 브루고뉴(Burgundy) 공작, 필리페 3세의 부인이었던 마가렛의 집안과 연계를 맺고 있었다. 그녀는 캑스턴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가 되었고 그로 하여금 필리페 3세의 전임 사제였던 라울 르페브르가 쓴 궁정 로맨스 ‘트로이 역사 모음집’(Recuyell of the Historyes of Troye)을 영어로 번역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영어로 쓴 첫 번째 인쇄된 책이 되었던 것이다.
1476년 캑스턴은 런던의 중심지 웨스트민스터에 영국 최초의 인쇄소를 열게 된다. 그는 평생 100여 권의 책을 인쇄하게 되는데 그 기술과 편집 능력은 유럽의 어떤 인쇄소에도 못지않았다. 그의 인쇄소에서 초서(Chaucer)의 '캔터베리 이야기'(Canterbury Tales), 존 가워(John Gower)의 ‘연인의 고백’(Confessio Amantis), 말로리 경의 ‘아서의 죽음’ 등이 인쇄되어 대중에게 전해지게 된다. 또한 프랑스어, 라틴어, 네덜란드어에 능통했던 그는 유럽에서 널리 읽히던 다수의 책을 직접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하였다.
캑스턴이 인쇄술을 도입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영어로 인쇄된 책은 없었다. 1439년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00~1468)가 유럽 최초로 이동식 인쇄기를 사용하는 것을 본 캑스턴은 상인으로서의 본능으로 인쇄업의 미래를 예측한다. 이렇듯 상업적 이유로 인쇄업을 시작했지만 그는 결국 영국의 인쇄업을 선도함으로써 활자화된 영어와 영문학의 기초를 놓게 되었던 것이다. 캑스턴의 인쇄술에 의해 영어는 비로소 단일한 방언으로 표현되었고, 이 표현이 널리 통용됨으로써 현대 영어의 표준화에 길을 열었던 것이다.
인쇄술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인쇄술 이전과 이후의 세계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새로운 1,000년에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근대사의 시발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꽃을 피웠고, 계몽과 과학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또한 지식의 대중화를 견인함으로써 현대의 지식 기반 경제의 발판이 되기도 하였다.
캑스턴은 오늘날의 영어와 영문학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고, 이후 중산층의 본격적인 대두와 더불어 소설문학의 대중화에도 기여함으로써 영문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