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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Nov 25. 2021

그런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이지현 : 그런 사람이면 좋겠네 

그런 사람이면 좋겠네 

                 이지현 


살아가노라면 

내 사소한 한 마디도 

그저 고개 끄덕끄덕해줄 사람 

내 말을 다 들은 후 

바람에게도 그 말 한마디 전하지 않고 

그저 웃다가 잊어버릴 

그런 사람 있음 좋겠네. 


살아가노라면 

내 희미한 쓸쓸함에도 다가올 듯 

잠잠히 서 있는 사람

서있는 꽃 한그루에게도 

내 슬픔 옮기지 않고 

강물 따라 흐르는 노을이나 건져서 

가는 길에 잠잠히 깔아주는 

그런 사람 있음 좋겠네.


살아가노라면 

수많은 사람 중에 사랑할 

단 한 사람

그저 말없이 꽃처럼 바람처럼 

그 자리에 서 있을 사람

비 되어 달려가는 어느 날 

말없이 온몸으로 받아주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네.  


I Wish (Him) to Be Such a Man 

                      Lee, Ji-hyun 


While living,

I wish to have such a man 

As just nods 

To my trivial word,

And after listening to me 

Never reveals it even to the wind,

Forgetting it in laughter.  


While living,

I wish to have such a man 

As just stands still

Ready to come to my vague loneliness,

And never betray my sorrow 

Even to a standing flower,

Silently spreading on my way 

An evening glow flowing along the river.


While living 

I wish him to be such a man 

The only man 

I will come to love among so many men,

Who will calmy stand there 

Like a flower and the wind,

And will silently embrace me in open arms 

The day I will run to him in the rain. 


이지현 시인의 시가 제게는 사랑의 시로 읽히지 않습니다. 한 여인이 사랑하게 될 남자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늘 그러고 싶었던 나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하고, 가벼이 여기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외로운 사람에게는 말없이 다가가 친구가 되고, 그의 슬픔마저 갈무리하는 그런 사람, 황혼 녘을 걷는 그의 어깨를 감싸주는 그런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앞에 흔들리지 않고 서서, 비에 젖어 지친 그 작은 몸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이제 그럴 수 있을까요? 받기만을 바라지 않고, 욕심과 자만을 내려놓고, 연민 안에서 그를 받아줄 수 있을까요? 간절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 위의 시는 이지현 시인의 시집 ‘그리운 건 너만이 아니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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