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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Dec 08. 2021

지도자의 거짓말

거짓말은 피할 수 없는 삶의 현실입니다. 악의냐 선의냐에 관계없이 거짓말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 대학 심리학 교수 벨라 디폴러(Bella Depaulo)는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거짓말의 빈도를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했습니다. 디폴러 교수는 147명의 학생들에게 일주일 간의 기간을  정하고 의도적으로 남을 속일 목적으로 거짓말을 한 경우 그것을 기록하도록 했지요. 그 결과 자발적으로 실험에 참여한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1.5회 거짓말을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거짓말이 우리의 삶에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면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그들도 거짓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 “오늘 나 어때 보여요?”라고 물을 때 거짓말 없이 곧이곧대로 답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는 잘 알고 있지요. 하지만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의 거짓말은 일상의 거짓말과는 다른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요?


시카고 대학 정치학 교수 존 미어셰이머(John J. Mearsheimer)는 독재자들보다도 자유 국가의 선출된 지도자들이 자국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뽑은 시민들에게 정직하지 못한 정치가들, 그들은 왜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미어셰이머 교수는 자신의 저서 “왜 지도자들은 거짓말을 하는가”(Why Leaders Lie)에서 세계의 대통령, 장군, 권력자들이 언제, 왜,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그러한 거짓말들이 얼마나 효과적인가에 대해 역사적 사실들을 예로 들어가며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지도자의 거짓말은 다섯 가지 류로 나뉠 수가 있는데 그 첫째는 국가와 국가 간의 거짓말입니다. 이것은 타국과의 관계에서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집니다. 과거 냉전 시대에 구 소련의 서기장 흐루시초프는 자국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수를 과장해서 발표하였는데 이는 미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을 억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한 때 그리스도 EU 가입을 위해 자신들의 재정 적자 규모를 축소해서  발표하기도 하였죠. 국가 간의 이러한 거짓말은 그다지 흔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웬만큼 정교하지 않고서는 다른 국가들이 믿어주지 않기 때문에 별로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이죠.


두 번째는 ‘공포의 전파‘(fearmongering)라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그들이 예측한 위협을 대중에게 확신시키지 못할 때, 위협의 능성을 알리려는 목적으로 국민들을 속이는 것이죠. 이는 보다 일반적이고 효과적입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의회는 전쟁의 당위성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부시 행정부는 뚜렷한 증거 없이 이라크가 대량학살 무기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사담 후세인의 위협을 과장함으로써 공포심을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심지어 미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도 1941년에 있었던 독일 잠수함과 미국 폭격기 사이의 우발적인 충돌을 확대하여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의 명분으로 이용했습니다. 이러한 ’ 공포의 전파‘는 독재국가 보다도 민주 정부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왜냐하면 독재자들과는 달리 자유국가의 지도자들은 전쟁과 같은 중대사를 결정할 때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들 필요가 크기 때문이죠.  


셋째는 ‘전략적인 은폐’(strategic cover-up)입니다. 이는 잘못된 정책 혹은 논쟁이 커질 가능성이 정책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입니다.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미국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위기를 해결한 것을 치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련이 쿠바로부터 미사일을 철수한 것은 미국 정부의 단호한 봉쇄정책의 결과가 아니라 미국도 터키의 미사일 기지를 폐쇄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이루어진 합의였습니다. 그러나 케네디 정부는 그러한 협상의 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젊은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와 결의를 부각하고, 있을 수 있는 국내외의 논쟁을 차단하기 위해서였죠.


네 번째는 이른바 ‘국가의 신화화’(national mythmaking)라는 것입니다. 신화화는 자국의 역사를 미화함으로써 국가의 결속력을 강화하려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학생들은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침탈의 역사를 찬양하는 교과서로 공부합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나 중국의 동북공정 같은 것도 그러한 예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비관습적 거짓말’(liberal lies)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관습이나 생각과 상충되는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거짓말을 가리킵니다. 2차 대전 당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말기 소련과의 협력을 위해 독재자로 알려졌던 소련의 서기장 스탈린(Joseph Stalin)을 ‘조 아저씨’(Uncle Joe)라고 친근하게 부르면서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지요. 국제 관계에서는 적도 친구도 없다는 말을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하고 불모의 땅으로 쫓아냈던 독재자에 대한 자유세계 지도자의 표현으로는 너무 뻔한 거짓말로 보였던 것입니다.  


지도자들은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요? 미어셰이머 교수는 그들이 “국가를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라 설명합니다. 따라서 “지도자들이 그 거짓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효과적으로 처리하기만 한다면 결국에는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자유세계 지도자들이 국익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국민들을 호도하여 궁극적으로 국가에 대한 심대한 타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분석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은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거짓말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거짓말을 할까요? 국가를 위해서? 쎄요. 혹시 개인의 이익과 영달 때문에 국민을 기만하고 속이고 있지는 않은지요? 대선 정국이 되면 언제나 이전 대통령 후보들의 간절한 호소와 공약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들이 제대로 지켜진 적이 있었던 가요? 지키지 못한 약속들에 대해 진심으로 솔직하게 사과한 적은 있었던 가요?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의 거짓말 수준은 너무도 후진적이고  천박해보입니다.  민주국가의 대통령들은 적어도 선거에 이기기 위한 거짓말만큼은 신중합니다. 그것이 밝혀질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엄청나니까요.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권력을 잡으면 그들의 모든 거짓말이 정당화될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좋다는 유치한 수준의 정치 놀음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정치의 계절에 거짓말을 두려워하는, 자신의 거짓말에 엄청난  결과와  저항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정직한  정치인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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