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Dec 08. 2021

홀로는 외로웠을 삶

정연복 : 벗의 노래

벗의 노래

        정연복


홀로는 이슬 하나의

무게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작고 여린 꽃잎들이


층층이 포개어지고

동그랗게 모여

이슬도, 바람도 너끈히 이긴다


하나의 우산 속에

다정히 밀착된

두 사람이


주룩주룩 소낙비를 뚫고

명랑하게 걸으며

사랑의 풍경을 짓는다


가파르게 깊은 계곡과

굽이굽이 능선이 만나서

산의 너른 품 이루어


벌레들과 새들과 짐승들

앉은뱅이 풀들과 우람한 나무들

그 모두의 안식처가 된다


나 홀로는 많이 외로웠을 생(生)

함께여서 행복한


참 고마운 그대여,

나의 소중한 길벗이여


Song of Friendship  

           Chung, Yeon-bok


Little and fragile petals,

Which, if alone, seldom seem to bear

The weight of a dewdrop,


Piled up one by one

Gathering together in a circle,

Easily weather the wind and harsh dewdrops.


Two lovers

Shoulder to shoulder

Under the same umbrella


Walking brightly

Under the pouring rain

Build a landscape of love.


Steep valleys

Together with winding ridges

Make the broad breast of a mountain


To be the home of everything,

Worms, birds, beasts

Shrubs and huge tress.


My life, which would be so lonely alone

Has been happy with you.


My dear friend,

My graceful fellow traveller.


오늘 30여 년을 같이 걸어온 친구와 통화를 했습니다. 그는 작년 이맘때 내게 누군가의 원고를 넘겨주며 감수를 부탁했었죠. 게으르기도 했고, 이 일 저 일 번잡해 그리 복잡하지 않은 원고를 여러 달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전 원고를 이메일로 부치고 그 담주엔가 그를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여전히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늘 멋쟁이 양복에 행커치프를 꽂고 멋들어지게 팝송을 부르던 그였습니다. 아마 30대는 그 친구와의 일탈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 자존심도 높고, 반듯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선 순간 나는 무언가 어색한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늘 직원들로 북적이든 그곳에 사람은 없고 빈 책상들만이 즐비했습니다. 나는 직감적으로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사장실 안에서 서둘러 나와 내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잠시 오랜만의 안부를 나누고 그는 최근에 겪고 있는 어려움을 탄식과 함께 풀어놓았습니다. 한 때 잘 나가던 출판사 사무실이 그의 일터였고, 삶의 현장이었죠. 그곳은 언제나 활기로 가득했었습니다. 2,3년 전 그곳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그는 여전히 유머를 잃지 않은 초로의 신사였습니다. 한참을 얘기를 나누다 나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작은 변화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주 말을 더듬었고, 낱말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하고 있던 이야기를 잊어버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나는 나이가 드니 말 가지고 먹고살던 늙은이들이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농담으로  얼버무렸죠. 그날 저녁을 함께하고 당구까지 한 게임하고서 헤어지는 순간 나는 그에게 병원에 한 번 가보라고 조심스레 말을 건넸습니다. 사업으로 받는 스트레스도 크고, 술자리도 많겠지만 이젠 건강을 챙겨야 할 때라고 말했죠. 사실 그 말은 그가 내게 수도 없이 했던 말이기도 했습니다. 운동이라곤 모르고 늘 책상 앞에 앉아있던 내게 걱정스럽게 던지던 그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오늘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10여분 정도의 전화를 끝내고 나는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가 들어도 그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나는 그와 대화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내게 주었던 원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가 하는 이야기들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기를 든 채 그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지요. 이제 육십 대의 중반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나는 그와 함께 수십 년을 일해온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의 상태를 물었죠. 한숨을 내쉬며 그가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사모님과 자제분들을 만났다고, 출판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상의하고 있다고, 사장님은 한동안 쉬셔야 할 것 같다고. 멀리서 아득하게 들려오는 것 같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어쩌지... 우린 아직 할 일이 많은데... 함께 호기롭게 이야기하던 그 많은 계획들은 어째야 하나...


그는 오래된 나의 길 벗이었습니다. 혼자서는 외로웠을 내 삶에 힘을 주었고, 의욕을 불러일으켰고, 따뜻한 행복감을 느끼게 했던 그는 나의 친구였습니다. 일하는 곳이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전화로 한두 시간씩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였습니다. 여린 꽃잎이 뭉치듯, 계곡과 능선이 어우러져 산을 이루듯, 그와 함께여서 의미를 찾았던 지난 세월이었습니다. 이보게, 제발 정신을 차리게... 아직 젊은데 왜 그리 약해졌나. 나는 어쩌라고 그리 세상을 잊어버리는가. 두 다리에 힘이 풀리고, 가슴이 무너집니다. 그래, 너무 오래 애썼으니 좀 쉬어야지.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우리 다시 만나세. 할 얘기가 많으이.      

  


매거진의 이전글 비스듬히 기대어 사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