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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Mar 13. 2022

구텐베르크와 스티브 잡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와 한 끼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다면 애플의 모든 기술을 다 주어도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학의 철학과를 입학했다가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사업의 길로 들어섭니다. 마이크로 소프트를 만든 빌 게이츠도 하버드 대학을 2년 만에 중퇴하고 창업을 했으니 백만장자가 되려면 대학을 일찍 그만두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시절 철학에 심취했던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소양이 풍부했고, 빌 게이츠 역시 인문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독서에 매진했다고 하니 현대의 대표적인 사업가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전문 분야와는 상관없이 지적 호기심과 인문적 소양이 뛰어난 인물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고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인문학은 문학, 역사, 철학을 가리킵니다. 이른바 ‘문·사·철’이라는 이 학문 분야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지극히 관념적이어서 과학기술이 선도하는 현대의 기업가들에게 그리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은 매우 실질적인 효용성을 지닌 것임을 위의 두 기업가들이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물건을 발명하고, 그것을 제품화하여 광고하고, 판매하고, 소비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인간입니다. 따라서 인간을 알지 못한 채 이루어지는 산업과 세일즈, 유통과 소비의 구조는 결코 효율적일 수 없으며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검은색 스웨터와 청바지 차림으로 아이패드를 들고 설명하던 스티브 잡스 역시 그러한 인문학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깊이 인식하고 있었죠. “애플이 아이패드를 만든 것은 우리가 인문학과 기술 사이의 갈림길에서 끊임없이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처럼 오늘날 과학기술의 가치는 인간에 대한 이해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서양에서 인쇄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판 인쇄기가 사용된 15세기 중반 무렵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금속활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유럽은 목판 인쇄조차 없는 상태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쇄술의 발전은 인류사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죠. 인간은 불을 발명해 날 것을 익혀먹게 되었고 그로 인해 턱의 발달이 뇌의 발달로 이어져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 인류학의 발견입니다. 한편 바퀴의 발명으로 동력의 신기원을 이루었습니다. 수많은 인류사적 발명 가운데 인쇄술은 지식의 확산에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게 했습니다. 손으로 옮겨 써야 했던 서적들을 인쇄를 통해 다량으로 만들 수 있었고,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지식과 교육은 대중들에 의해 공유되었습니다. 교육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8세기 중엽에 간행된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을 가지고 있고, 고려의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직지심체요절’은 ‘구텐베르크 성서’(1455)보다 78년이나 앞선 1377년에 인쇄되었습니다. 가히 한국은 인류의 위대한 발명인 인쇄술 분야에 있어 세계를 선도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심지어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기술이 고려의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세계에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누리는 영광에 비해 우리의 금속활자가 지니는 위대성은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금속 인쇄술을 발명하고도 그것을 상용화하지 못함으로써 서양에서 만큼 광범위한 지식의 확산과 교육의 민주화에 기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구텐베르크는 인쇄술의 상업적 가치를 내다본 사업가였습니다. 지금의 화폐 가치로 한 권에 2억 원이나 하던 성경을 일주일에 500권이나 찍어낼 수 있었으니 금속활자 인쇄술은 그 자체로 최고의 상품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 초기 우리의 인쇄술은 대중화되지 못했습니다. 인쇄업이 국가 주도로 이루어졌고, 기술의 개발도 적극적이지 못했습니다. 국가 통치를 위한 서적의 간행이 주로 이루어지다 보니 지식의 확산에도 기여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구텐베르크와 스티브 잡스의 경우에서 보듯 과학기술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대중의 이익에 기초하지 않는 한 큰 의미를 지닐 수 없습니다. 인문학의 가치 또한 역사 발전에 구체적인 결과를 초래하지 못하는 한, 낡은 양피지 위의 한담(閑談)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 위의 글은 월간 '에세이' 3월  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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