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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Feb 21. 2022

느리게 사는 삶

장영희 : 너도 느리게 살아봐

너도 느리게 살아봐

               장영희


수술과 암술이

어느 봄날 벌 나비를 만나

눈빛 주고받고

하늘 여행 다니는

바람과 어울려

향기롭게 사랑하면

튼실한 씨앗 품을 수 있지.

그 사랑 깨달으려면

아주 천천히 가면서

느리게 살아야 한다.


너울너울 춤추며

산 넘고 물 건너는

빛나는 민들레 홀씨

그 질긴 생명의 경이로움 알려면

꼭 그만큼 천천히 걸어야 한단다.


번쩍 하고 지나가는 관계 속에서는

다사로운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하고

사랑 한 올 나누지 못한다

쏜살같이 살면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할 것

볼 수 없단다.


마음의 절름발이일수록

생각이 외곬으로 기울수록

느리게 살아야 하는 의미를

가슴에 새겨야 한단다.

아이야,

너도 느리게 살아 봐.


Try to Live Slow

               Jiang, Young-hee


One spring day,  

The stamen and pistil meet bees and butterflies,

Exchange eye contacts,

Play with the wind

Travelling in the sky

And make love in fragrance.

Then a robust seed is conceived.

To realize that love

You need to walk slowly  

And live at a leisurely pace.  


Dancing with swaying arms,

Twinkling dandelion puffs

Pass rivers and hills.

To know the wonder of tough life,

Be sure to walk as slowly as they do.  


In a relation flowing so fast

You can neither say a word with others

Nor share an ounce of love.

If you live like a fleeting arrow,

You can never see

What should be seen by the eyes of the mind.


The more your mind limps,

And the more biased your thought is,

The more deeply the meaning of living slow

Should be inscribed in your mind.

Child,

Try to live slow,


2009년 5월의 봄 빛 속에 떠나간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 그분의 시를 아직 겨울의 추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2월의 어느 날 다시 읽는 것은 우리의 삶이 너무 척박하고 가파르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뭐가 그리 급한 것일까요? 서둘러 걸어 도착할 곳은 어디일까요? 장 교수님과 같은 시대, 같은 학문의 길을 걸어온 저이지만 그분의 담백하고 순수한 사유의 깊이에 미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날엔가 그녀가 펜을 눌러 써내려간 시를 맞이하고, 공감하고, 느끼는 순간만큼은 시인과 하나 되는 정신의 합치를 느낍니다. 씨앗을 잉태하고, 바람에 날려 퍼지는 생명의 신비를 느끼기 위해서는 천천히 걷고 느리게 살아야 합니다. 촉박한 관계와 삶 속에서는 사랑의 경이로움을 깨닫지 못합니다. 서둘러 가다 보면 마음으로 보아야 할 것도 놓치고 말 것입니다. 마음은 비틀거리고, 한 곳만 바라보는 고집이 늘어가는 세월 속에서 느리지만 여유로운 삶의 환희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시인은 늙어가는 아이에게 한 번 느리게 살아보라고 속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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