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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연설(4)

마하트마 간디의 의회 연설

by 최용훈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1940년 대 초반 인도 국민들은 자유를 얻기 위한 자신들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거의 한 세기 동안 인도는 이미 대영제국의 직접 통치 하에 있었었고, 많은 인도인들은 극심한 착취와 억압을 겪고 있었다. 마하트마 간디와 인도 의회는 영국으로 하여금 ‘인도를 포기하라’고 압박하는 완전히 비폭력적 운동을 추진하였다. 비폭력-시민 불복종 운동의 선구자였던 간디는 영국의 지배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는 ‘인도 포기 결의안’의 채택과 더불어 또다시 비폭력 운동의 전개를 주창하였다. 다음은 1942년 8월 8일 의회에서 행한 그의 연설이다.


결의문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한두 가지 말씀드리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두 가지를 분명히 이해하시기를 바라고 그것을 저와 같은 관점에서 고려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저와 같은 관점을 가져달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동의하신다면, 제가 드리는 말씀을 실천해야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커다란 책임입니다. 제가 1920년의 저와 같은 사람인지, 제 안에 어떤 변화는 없는지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적절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분명 1920년의 저입니다. 저는 근본에 있어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저는 비폭력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에 대한 저의 믿음은 오히려 더 커졌을 뿐입니다. 실제로 현재의 결의문은 이전의 제 글이나 발언과 상충되는 부분이 없습니다.


현재와 같은 일들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억압과 고통은)오히려 거의 일어나지 않을 일입니다. 제가 오늘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에는 순수한 ‘비폭력/불살생’(Ahimsa) 만이 있을 뿐임을 여러분들께서 알고 느껴주시길 바랍니다. 실무위원회가 작성한 결의문 초안은 ‘비폭력’에 기초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계획된 투쟁도 그것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 가운데 비폭력에 대한 믿음을 잃으셨거나 싫증을 느끼시는 분이 있으면 이 결의안에 대한 투표를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입장에 대해 분명히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신은 내게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선물, 비폭력의 무기를 주셨습니다. 저와 저의 비폭력주의는 오늘 길을 떠납니다. 이 땅에 폭력의 불길이 번지고, 그에서 벗어나기 위해 절규하는 이 위기 속에서 신이 제게 주신 재능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신께서 저를 용서치 않으실 것이고, 저는 그러한 재능을 받을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로 여겨질 것입니다. 이제 저는 행동해야 합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위협을 가하고 있는 지금 저는 망설이거나 그저 지켜보지 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일은 힘의 추구가 아닙니다. 인도의 독립을 위한 순수하게 비폭력적인 투쟁입니다. 폭력적인 전투에서 승리한 장군은 종종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자가 됩니다. 하지만 의회의 체제는 근본적으로 비폭력적이므로 독재의 여지는 없습니다. 비폭력적인 자유의 전사는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도 탐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로지 조국의 자유를 위해 싸웁니다. 자유를 얻게 되면 누가 통치할 것인가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권력은 인도의 국민들에게 있을 것이며 그들을 대신한 의회는 권력이 누구에게 위임될 것인가를 결정할 것입니다. 소수에 불과한 파시인(Parsis; 인도에 거주하며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이란계 민족)들이 집권할 수도 있으며---저 자신도 보고 싶은 일이지만--- 현재 의회 내에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이 힘을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다음과 같은 말에 동조하게 되겠죠. “이 공동체는 미시적(微視的)이다. 그 정당은 자유의 투쟁에서 적절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왜 그 정당이 모든 권력을 가져야 하는가?” 왜냐면, 의회는 그 시작 이래 지역적 분열의 폐해로부터 철저히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의회는 언제나 국가 전체의 측면에서 생각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왔던 것입니다...


저는 비폭력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우리가 아직도 이상(理想)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폭력 안에는 최종적인 실패나 패배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원해 온 일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신이 우리를 도와 지난 20년 동안의 끊임없는 침묵의 수행(修行, Sadhada)에 성공의 왕관을 씌우길 원하셨기 때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세계사 안에서 우리의 투쟁보다 더 진정으로 민주적인 투쟁은 없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감옥 안에서 저는 영국의 역사학자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의 ‘프랑스 혁명사’를 읽었습니다. 또한 자와할랄 선생(Pandit Jawaharlal)은 제게 러시아 혁명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혁명의 투쟁들이 폭력이라는 무기로 행해짐으로써 민주적 이상을 실현하지는 못했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그려온 민주주의, 비폭력에 의해 수립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모두에게 평등한 자유가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을 그러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초대합니다. 이를 깨닫는다면 힌두교와 무슬림교의 차이는 무의미해지고, 여러분들은 모두 조국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 함께 한 인도인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영국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나는 우리 국민들 사이에 영국에 대한 증오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영국인들의 행동에 혐오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영국의 제국주의와 영국인들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그 둘은 하나입니다. 이 증오심으로 어떤 사람들은 (또 다른 제국주의자) 일본인들을 환영하기조차 합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노예제를 다른 노예제로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불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국인들과 다투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제국주의와 싸우는 것입니다. 영국의 세력을 철수시키겠다는 계획은 분노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계획은 이 중대한 순간에 인도로 하여금 스스로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도와 같은 큰 나라가 유엔이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막무가내로 얻어진 돈과 물자에 도움을 받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자유롭지 않은 한 희생과 용기의 진정한 정신을 불러일으킬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가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면 영국 정부가 우리의 자유를 억누를 수만은 없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고로 우리는 증오심을 털어내야 합니다. 저 자신에 대해 말하자면 저는 어떤 증오심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이제껏 보다도 더욱 영국인들을 가까운 친구로 느낍니다. 한 가지 이유는 오늘날 영국인들은 곤경에 처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우정은 그들을 잘못으로부터 구해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영국은 (벗어날 수 없는) 심연 속에 빠져들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그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물론 당분간은 그것이 영국인들을 분노하게 하여 그들을 돕기 위해 내민 우호의 손길을 뿌리치게 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비웃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나의 주장입니다. 제 삶 중에 가장 큰 싸움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순간에 저는 누구에게도 증오심을 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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