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Aug 25. 2020

당신께 드리는 말 선물 (37)

불과 얼음 : 로버트 프로스트

Fire and Ice    

                  by Robert Frost    

Some say the world will end in fire,

Some say in ice.

From what I’ve tasted of desire

I hold with those who favor fire.

But if it had to perish twice,

I think I know enough of hate

To say that for destruction ice

Is also great

And would suffice.     


어떤 이는 세상이 불로 끝난다고 하고

어떤 이는 얼음으로 끝난다 한다.

욕망을 맛본 내 입장에서는

불을 택한 사람들과 같은 의견이다.

하지만 세상이 두 번 소멸해야 한다면

증오에 대해 충분히 아는 나로서는

얼음 역시 파멸에는 

큰 힘이 있고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로버트 프로스트, "불과 얼음")    

  

  우리의 세상은 반드시 멸망하는가! 인류 역사의 전쟁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 암울한 시대에 프로스트는 당연히 세상의 종말을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성경 속의 대홍수, 빙하기의 절멸 그리고 불의 심판을 떠올렸겠죠. 그는 아직 또 다른 거대한 전쟁을 겪지 않은 시점에서도 그렇게 세상의 종말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얼음은 뿌리 깊은 인간의 비극적 결함, 욕망(탐욕)과 증오의 은유였습니다. 불에 타 죽는 부나방처럼 인간은 아직도 그 탐욕의 아포리아 속에서 길을 잃은 채 헤매고, 얼음보다 차가운 증오의 가슴으로 타인의 삶을 파괴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더 큰 회의와 절망 속에서 이렇게 세상의 끝을 묘사합니다.      


우리는 텅 빈 사람들

우리는 박제된 사람들

서로 기대어 서있으며

지푸라기로 채워진 머리. 아아, 가엾어라!

.....................................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

굉음을 내면 서가 아니라 흐느끼며. (엘리엇, '텅 빈 사람들')   

  

  두 시인의 회한의 외침이 있은 지 10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예전의 암흑 속에서 여전히 빛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힘센 자들은 약한 무리들을 괴롭히고 깔보고, 무슨 대단한 주의나 사상을 섬기듯 갈라져서 손가락질 해대고, 스스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내 것, 네 것의 강함과 약함을 견주려 하니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벌레 하나에 온 몸을 조아려 굴복하는 세상에 과학은 그저 하나의 신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먼저 사람됨을 다시 찾아야겠습니다. 자연으로부터 겸손을 배우고, 신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의 가치를 깨달아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돌아설 수도 없는 막다른 길에서 그저 흐느끼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께 드리는 말 선물 (3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