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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26. 2020

당신께 드리는 말 선물 (38)

문가에 계시는 어머니

  그레이스 팔리(Grace Parley)는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이자 시인입니다. 교사이고 정치 운동가이기도 하죠. 그녀는 우크라이나 출신 유태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레이스의 부모는 그녀가 태어나기 16-7년 전인 1906년에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고 뉴욕에서 새 삶을 시작했죠. 아버지는 늦은 나이에 의학을 공부를 해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평생의 동반자였던 아내는 그레이스가 성년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죠.

  그레이스 팔리는 어느 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들으며 이제는 곁에 없는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낯 선 타향에서 아버지와 함께 힘겨운 삶을 살아냈던 어머니를 그리워합니다. 이곳저곳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레이스가 그리움을 담아 쓴 ‘어머니’라는 짧은 글을 소개합니다. 번역 과정에서 아주 조금 표현을 생략한 것이 있습니다. 덤덤한 그리움이 제 마음에 너무 강하게 다가와서 함께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어느 날 라디오를 듣고 있었어요. 노래가 흘러나왔죠. “문가에 선 어머니가 보고 싶어요.”라는 노래였어요. 맙소사. 난 그 노래를 이해할 수 있었죠. 나도 문가에 서있던 어머니가 보고 싶었으니까요. 사실 그녀는 자주 이곳저곳 문가에 서서 나를 바라보곤 했어요. 그 날, 어두운 복도를 뒤로하고 어머니는 현관 문 앞에 서있었죠. 새해 첫날이었습니다. 슬픈 목소리로 내게 말했어요. “열일곱 살 여자 아이가 새벽 네 시에 집에 들어오면, 스무 살이 되어선 몇 시에 들어올 거니?” 어머니의 질문은 농담도 비난도 아니었어요. 그 때 어머니는 걱정스럽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으니까요. 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자신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셨겠죠. 그래서 그것이 궁금했던 거 에요.           

  또 다른 때는 내 방 문가에 서있었어요. 내가 정치적인 문제로 부모님을 비난했던 직후였죠. “제발 가서 자. 바보같이 굴지 말고. 아빠 엄마도 이미 다 겪은 거야. 다 생각했던 거라고.” 

부엌문 앞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죠. “무슨 점심을 하루 종일 먹니. 여기저기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도대체 뭐가 되려고 저러는지.”    


그리고 어머니는 돌아가셨죠.     


  난 언제나 어머니를 그리워했어요. 문가에 서 있던 어머니뿐이 아니었습니다. 아주머니들과 함께 계시던 부엌, 거리가 내려다보이던 창가, 백일초와 금잔화 피어있던 꽃밭,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거실...그 모든 곳에 계시던 어머니가 보고 싶었어요.     

  두 분은 편안한 가죽 소파에 앉아 계셨죠. 모차르트를 듣고 계셨어요.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죠. 마치 아주 오래 전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와 같은 모습이었어요. 아버지가 이제 막 해부학교수에게 100점짜리 답안지를 제출한 것처럼 보였어요. 어머니가 살림을 위해 상점 일을 그만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이제 다시 거실 문 앞에 서있는 어머니를 보고싶습니다.     


  어머니는 잠시 그곳에 서계셨어요. 그리고는 아버지 곁에 앉으셨죠. 두 분은 값 비싼 녹음기를 갖고 계셨어요. 바흐를 듣고 계셨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했죠. “잠시 얘기 좀 해요. 우리 이젠 너무 대화가 없는 것 같아.” 

“피곤해.” 아버지가 말했어요. “모르겠어? 오늘 본 환자만 서른 명이야. 모두 아프고, 모두 말하고, 말하고, 또 말했지. 음악이나 듣자고. 당신도 한 때는 음악 좋아했잖아.”    


그리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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