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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Aug 28. 2020

당신께 드리는 말 선물 (39)

존 던 : '누구도 홀로 선 섬은 아닙니다'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의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갑(岬)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며

만일 그대의 친구나 그대의 영지(領地)가 그리되어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전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서 울리는 것이니! (존 던의 ‘기도문’ 중에서)    


존 던은 형이상학파 시인(metaphysical poets) 중의 한 사람이었죠. 그의 ‘벼룩’이라는 시를 보면 사랑하는 여인에게 하룻밤을 같이 보내자는 구애를 두 사람의 피를 빠는 벼룩 얘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문학이론에서 ‘형이상학적 기상(寄想, metalphysical conceit)’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기발한 착상 혹은 비유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 벼룩을 보시오/ 그대가 내게 주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벼룩은 날 먼저 빨아먹고 이젠 그대를 빨고 있소/ 그리고 이 벼룩 속에서 우리의 두 피는 하나가 되지요/ 이것이 죄나 수치 혹은 처녀성의 상실이라고/ 불릴 수 없음은 그대도 알고 있소.’    


기이한 발상인 것은 틀림없지요. 사랑의 행위로 한 몸이 된다는 말은 자주 쓰지만 벼룩 속에서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그리 아름다운 표현은 아닌 것 같네요. 그런데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은 연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인류라는 이름으로 오늘의 우리는 하나이어야 하니까요. 분열과 고립은 더 이상 우리의 생존을 담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위의 시는 영국 성공회 사제이기도 했던 존 던의 ‘기도문’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표현이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으로 차용된 이 시는 놀라운 통찰을 던지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바로 나의 상실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감동까지 느껴집니다. 오늘날 세상을 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도 홀로 선 섬이 될 수는 없어요.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인 하나의 운명 공동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분열되고 고립된 삶을 살고 있는지요. 유엔 식량기구에서 활동했던 스위스의 장 지글러 박사는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에서 오늘날 120억을 먹일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면서도 80억에 불과한 인류의 상당 부분이 왜 굶주려야 하는지, 왜 5초마다 어린아이 한 명이 굶어 죽어야 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이 척박한 시대에 모든 인류가 하나이고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들리는 조종(弔鐘)은 결코 나 아닌 다른 사람들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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