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의 종류, 출판 그리고 르네상스 연극의 종말
르네상스 영국의 희곡들
르네상스 시대 영국 연극 가운데는 영국이나 유럽의 역사를 다룬 사극(史劇)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리처드 3세’(Richard III), ;‘헨리 5세’(Henry V) 등과 같은 영국 왕들의 삶을 다룬 셰익스피어의 희곡이나 크리스토퍼 말로의 ‘에드워드 2세’(Edward II), 조지 필의 ‘에드워드 1세의 유명한 연대기’(Famous Chronicle of King Edward the First) 등의 작품들도 그러한 범주에 속한다. 역사극들은 또한 1576년에 있었던 스페인 군대의 앤트워프 포위 공격을 그린 ‘런던의 라룸’(A Larum for London)처럼 동시대의 이야기도 담고 있었다. 익명의 작가가 쓴 이 작품은 ‘스페인의 분노’(Spanish Fury)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1602년 런던에서 출판되었다.
당대에 가장 인기 있던 장르는 비극이었다. 특히 말로의 ‘파우스트 박사’(Dr. Faust)나 ‘말타의 유대인’(The Jew of Malta)와 같은 공연들은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관객들은 특히 토마스 키드의 ‘스페인의 비극’(The Spanish Tragedy) 같은 복수극들을 좋아하였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알려진 ‘햄릿’(Hamlet), 오셀로(Othello), 리어왕(King Lear), 맥베스(Macbeth) 등 많은 비극들이 이 시기에 공연되었다.
희극 또한 인기가 높았는데 특히 로마의 신희극(New Comedy)을 본 따 런던에서의 삶을 풍자적으로 다루고 있던 ‘도시 희극’(City Comedy)이 유행했다. 토머스 데커(Thomas Dekker)의 ‘구두장이의 휴일’(The Shoemaker’s Holiday)나 토머스 미들턴(Thomas Middleton)의 ‘칩사이드의 순결한 처녀’(A Chaste Maid in Cheapside)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전원극, '양 치는 착한 시골 처녀'(The Faithful Shepherdess)나 심지어 도덕극, '하나에 든 네 편의 희곡' (Four Plays in One, 1608-13)과 같은 이전의 연극도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1610년 이후에는 새로운 형태의 희비극(tragicomedy)이나 스튜어트 왕조의 첫 두 왕들인 제임스 1세(James I)와 찰스 1세(Charles I) 치세에 공연되었던 가면극(masque) 들이 전성기를 누리기도 하였다.
희곡의 출판
르네상스 시기 영국에서 출판된 희곡들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220편에 달하는 헤이우드(Heywood)의 희곡 가운데 책의 형태로 출판된 것은 스무 편 정도였다. 전체적으로는 이 시기 출판된 작품은 600 편이 조금 넘는 정도였는데 대부분 4 절판 단행본으로 되어있었다. 셰익스피어나 벤 존슨의 희곡집, 보몬트(Francis Beaumont)와 플레처(John Fletcher)의 공저 작품집과 같은 대형 서적들은 이후 제한된 범위에서 출판되었다. 최근까지도 이러한 희곡집들은 르네상스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서적상들에게는 이윤을 창출하는 사업인 것으로 여겨졌었다. 20세기 말에 이르러 당시의 희곡 출판이 위험성이 많고 이윤도 크지 않은 사업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르네상스 영국의 가장 성공한 출판업자들 가운데 윌리엄 폰손비(William Ponsonby)나 에드워드 블라운트(Edward Blount) 같은 이들은 희곡을 거의 출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희곡 가운데 몇몇 작품은 책의 형태는 아니지만 육필 원고의 형태로 남아있다.
영국 르네상스 연극의 종말
종교개혁으로 인해 대두한 청교도들은 연극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오락‘은 죄라고 믿었던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희곡작가들이나 배우들은 군주나 귀족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었다. 1642년부터 1651년까지 잉글랜드 왕당파와 의회파 사이의 벌어진 잉글랜드 내전 초기, 오랫동안 런던에서 세력을 떨쳤던 청교도들은 마침내 런던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1642년 9월 2일 청교도들의 영향 하에 있던 의회는 런던의 극장에서 연극 공연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흔히 이야기되는 것과는 달리 극장 자체를 폐쇄하거나 파괴하라는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1642년 이후 청교도들에 의해 공연이 중단된 이후에도 연극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당국에 의해 허락된 짧은 희극 공연이 ‘드롤’(Drolls)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었다. 하지만 장막극들은 철저히 금지되었다. 극장들은 폐쇄되지 않은 채 연극 공연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1642년 이래 18년 동안 금지되었던 연극은 1660년 왕정이 복고된 후에야 다시 재개되었다. 극장들은 이전의 희곡들을 각색해 공연을 시작하였고, 왕정복고 시대의 새로운 희극들이 발전하여 17세기 후반 독특한 형태의 영국 연극을 이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