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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자화상-1

나의 글쓰기에 대하여

by 최용훈

한 번도 솔직한 글을 써본 적이 없다. 부러 거짓을 쓰려한 것은 아니지만 감정을 진솔하게 쓰는 기술이 내겐 없다. 그래서 내 글에 애착을 가져본 적이 없다. 잘 쓴 글도 없지만 쓰고 나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글도 없다. 그저 문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없을까 한 번 읽어본 뒤에는 다시 돌아보지도 않는다. 누군가는 읽고 또 읽어서 수없이 고치고 또 고친다는데 나는 그럴만한 인내심이 없다. 습관인 것 같기도 하다. 그 못된 습관을 고치려 해 본 적도 별로 없다. 마치 피우다 버린 담배꽁초 같은 내 글들. 사실 그것들이 내 글인지도 의심스럽다. 어디서 본 글, 누군가에 들은 얘기, 말이 막히면 인터넷이나 책에서 빌려온 구절들... 그런 것들을 마치 내 생각인 듯 주절거렸던 것들이 부끄럽기도 하다. 그런데 갑자기 그 글들이 엄청난 짐으로 다가온다. 마치 재활용 버리는 날을 잊어버린 것처럼 당황스럽다. 게다가 호기롭게 인터넷에 글을 올린 지가 두 해에 가깝다. 아, 어째야 하나. 연인이면 헤어지기라도 하지 사랑하지도 않는 글에 붙잡혀 내 인생이 갑갑해진 것은 아닐까.


나는 좀처럼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는다.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금방 잊어버린다. 그 유일한 방법은 잠들어 있는 것. 육십의 중반을 지내면서도 다행히 내겐 불면증이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은 조금 변했지만 등만 대면 잠드는 타입이다. 유일하게 깨어있는 시간은 바로 그 거머리 같은 쓰기와 생각하기에 몰두하는 때뿐이다. 책 읽기를 유난히 즐기는 편도 아니다. 쉽게 잠들기 때문이다. 머리에 들어오는 것이 없는데 무언가라도 내뱉으려 할 때면 얼마나 고민스럽겠는가! 사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목적 없는 글 읽기는 해 본 적이 없다. 지독한 오만함이다. 자만에 빠진 나의 모습은 또 있다. 한 번도 남의 글에 크게 감동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냥 덤덤하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글에도 무감동이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에는 관심도 미련도 두지 않겠다는 자기 방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세월을 보냈으니 내게 무슨 발전이 있었겠는가.


시를 써보고 싶었다. 우선은 길게 생각할 수 없는 내 기질에 맞는 것 같았다. 적당히 몇 개의 단어로 치기 어린 생각을 압축하고 적당히 애매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모양이다. 턱도 없는 일이었다. 몇 줄 적다 보면 옴 몸이 오글거리는 유치함과 치기가 꼭 열댓 살 먹은 아이의 낙서 같다. 아 이건 아니야. 그래서 내 전공(?)인 희곡을 써볼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분석만 하던 희곡의 구성이 왜 그리 어려운지.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말투가 죄다 나와 같다. 서로 다르지가 않다. 감동도 없고 철학도 없다. 그래서 둘 다 포기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시인과 작가에 대한 존경심은 아직 없다. 주일 예배에 나가면서도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사람들은 왜 이름마저 생소한 저 책 속의 인물들을 경배하는지 궁금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는 무슨 글을 쓰는 것일까? 신변잡기도 아니고, 예술성 있는 글도 아니고, 생활 속의 지혜가 담겨있지도 않다. 수십 년 간 참 많은 이야기들을 했던 것 같다. 제자라는 이름의 그들이 수 만 명은 될 것 같다. 그들의 마음에 남은 얘기가 한 마디라도 있을까? 내 글(글이라고 할 수 있다면)의 한 구절이라도 우연히 읽은 몇 사람에게 작은 감흥이라도 있었을까? 왜 이렇게 냉소적이 되었을까. 모두 내 글들 때문이다. 잠시 글쓰기를 멈추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무엇을 쓸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써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한 뒤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오늘 밤을 지내고 다시 잠에서 깨어나면 여전히 나는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지 모른다. 할 일이 그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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