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May 06. 2022

잊기보다 어려운 것

한용운 : 나는 잊고저

나는 잊고저

             한용운


남들은 님을 생각한다지만

나는 님을 잊고저 하여요.

잊고저 할수록 생각하기로

행여 잊힐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읍니다.


잊으려면 생각하고

생각하면 잊히지 아니 하니,

잊도 말고 생각도 말아 볼까요.

잊든지 생각든지 내버려 두어 볼까요.

그러나 그리도 아니 되고

끊임없는 생각생각에 님뿐인데 어찌 하여요.


구태여 잊으려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과 죽음뿐이기로

님 두고는 못 하여요.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저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


I Try to Forget

              Han, Yong-un


Others say they think of their love

But I try to forget you, my love.

But the more I try, the more I think of you.

So I think of you hoping that I can forget you.  


Though I try to forget you, I still think of you.

Even when I think of you, I never forget you.

Shall I nether forget nor think of you,  

Or, let myself forget or think of you?

But all my effort comes to nothing

And I endlessly think of you for nothing.


If I desperately try to forget you,

I shall be able to forget you.

But nothing is left but sleep and death,

So how can I ever forget you?


Ah, Trying to forget you

Is more painful than not forgetting you.   


시의 매력은 역설이지요. 시 속의 화자는 끊임없이 잊으려 하지만 결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하지만 잊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생각도, 잊지도 못하는 ‘나’는 이제 흘러가는 대로 그냥 두려 합니다. 무엇을 하려 할수록 힘들기만 합니다. 애쓰면 잊을 수는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잠들거나 죽는 것만이 해결책이니 ‘나’에게는 더 이상 선택권이 없을 뿐입니다. ‘생각’과 ‘망각’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온 마음을 휘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답 없는 역설로 인한 긴장감은 마지막 연의 고백을 통해 해소됩니다. 당신을 잊으려 애쓰는 것이 당신을 잊을 수 없는 것보다 괴로운 것이니까요. 시적 긴장감과 그 해소의 순환이 선명히 드러나는 시는 모순 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초상(肖像) 일지 모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잊히긴 할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