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국 문단의 거두였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1897~1962)는 대중들 앞에서 거의 연설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 수락 연설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사람들의 큰 관심거리였다. 당시 노벨 위원회는 그를 선정한 이유로 “현대 미국 소설을 위한 강력하고 예술적으로 독특한 공헌”을 들었다. 그의 연설은 1950년 노벨상 기념 만찬 식장에서 이루어졌다. 그 해는 당시 소련의 핵무기에 대한 우려가 커져가던 시절이었다. 미국인들은 소련이 핵폭탄을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포크너의 표현대로 “언제 우리는 폭탄에 날아가 버릴 것인가?”라는 공포가 만연했다. 포크너는 그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시인, 작가, 인류 전체가 “인간의 정신이라는 소재로부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 기념 만찬에서 연설하는 윌리엄 포크너(1950)
윌리엄 포크너 노벨상 수락연설, 1950년 12월 10일
저는 이 상이 한 인간으로서의 제가 아니라 저의 작품, 고통과 땀방울 어린 인간 정신 속에 이루어진 제 생애의 노력에 주어진 것이라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광이나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이라는 소재로부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상은 그저 제게 맡겨진 것일 뿐입니다. 이 상의 목적과 그 기원의 중요성에 상응하는 금전적 보상을 위한 노력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순간을 고통과 시련에 헌신하여 언젠가는 제가 서있는 이 자리에 서게 될 젊은 남녀들이 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계기로 삼아 갈채 속에 같은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비극은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겪어옴으로써 이제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된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물리적 공포입니다. 더 이상 정신의 문제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던지는 단 한 가지 질문은 이것뿐 입니다. ‘언제 우리는 폭탄에 날아가 버릴 것인가?’ 이 때문에 오늘날 글을 쓰는 젊은 남녀 작가들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소재, 스스로와 갈등을 일으키는 인간 마음의 문제들을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쓸 만한 가치가 있고, 고통과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제 그들은 다시 인간 정신의 문제들을 배워야 합니다. 가장 저열한 것은 두려워하는 것임을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것은 잊고 오랜 진실, 마음의 진실, 보편적인 진실---사랑, 명예, 동정심, 자부심과 공감 그리고 희생---만을 자신의 글에 담을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어떤 이야기도 덧없고 실패한 것이 될 것입니다. 작가들은 사랑에 대해 쓰지 않고 욕정에 대해 씁니다. 누구도 아무런 가치를 잃지 않을 패배에 대해 씁니다. 희망이 없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정심이나 공감이 없는 승리에 대해 씁니다. 보편적인 본질에 대해 아파하지 않고 어떤 상처도 남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심장이 아니라 그 언저리에 대해 쓸 뿐입니다.
그들이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다시 깨닫지 못한다면 인간의 종말 앞에 서서 그것을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인간의 종말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인간은 견뎌낼 것이기에 영원한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죽음의 마지막 종소리가 붉게 죽어가는 저녁에 움직임 없이 매달린 마지막 쓸모없는 바위를 변화시키고 스러져 갈 때, 그때조차도 한 가지 소리가 여전히 남게 될 것이며, 미약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여전히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나는 인간이 단지 견뎌내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가 이겨내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인간은 불멸입니다. 만물 가운데 인간만이 홀로 다하지 않는 목소리를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고, 인간에게는 공감과 희생과 인내를 갖게 하는 정신, 영혼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과 작가의 의무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마음을 고양하고, 과거의 영광이었던 용기, 명예, 희망, 자부심, 공감과 동정심과 희생을 상기시켜 인간으로 하여금 견뎌내도록 돕는 것은 그들의 특권입니다. 시인의 목소리는 인간에 대한 기록만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지지대, 그 기둥들 가운데 하나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