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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훈 Jun 14. 2022

젊은 기형도를 추억하며

기형도 : 기억할 만한 지나침  

기억할 만한 지나침

                          기형도


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 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 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A Memorable Passing 

               Ki, Hyung-do 


And I happened to pass by there.

Snow was falling heavily on the dark street.

Immovable buildings are covered with snow,

Turning into a mountain of papers.

It was a certain office where a dim light was leaking out.

Over the window was seen a clerk

Who was crying alone in that cold and large room.

It snowed in great flakes and behind me was no one.

Struggling to keep silence in me, I was almost tormented.

At a loss what to do and unable to do anything

I had to stay there at the window till he stopped crying. 


Now I am recalling him by chance. 

Deep at night, out of the window of an empty office, a thick snow is falling.

I don’t think of the man to be foolish.  


기형도의 시를 읽으며 고골의 ‘외투’가 생각나고,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 ‘이방인’의 뫼르소가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젊은 시인의 한 순간, 눈 오는 밤 관공서 창문 너머로, 희미한 불 빛 아래 흐느끼는 모습을 바라본 그 순간은, 왜 이리 외투 깃을 올리고 추운 밤거리를 헤매던 젊은 시절의 아픈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것일까?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열패감과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날 선 메마름이 어찌 이리 오롯이 되살아오는 것일까? 아 기형도! 좌절했던 한 젊은 시인이 겪었을 그 척박함에 가슴 저려, 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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