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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과거를 통해 보는 현재

by 최용훈

E. H. 카(E. H. Carr)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가 나누고 있는 대화이다.”라고 말하였다. 역사는 역사가의 손에 의해 써져 후세의 사람들에게 과거를 대면하게 한다. 과연 과거는 현재를 보는 거울이 될 수 있는가. 역사 속의 인물들은 기록된 대로 판단해도 좋은 것인가. 역사를 다루는 문학은 더 큰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오늘날 실제로 볼 수 없고, 입증할 수 없는 과거의 기록이 과연 진실을 정당하고 올바르게 전달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라고 말한다. 엄밀한 의미에서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라고 인식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과거의 영역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와 과거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과거의 시간과 경험 속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과거를 외면하고 살 수 없다. 또한 역사라는 과거를 올바른 시각에서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릇된 과거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록된 역사가 왜곡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역사의 기록은 인류에게 던져지는 과거의 목소리임을 부정할 수 없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세계를 여행하면서 고대 페르시아 전쟁을 묘사한 ‘역사’(Historiae)라는 책을 저술한다. 신에 대한 높은 경외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인간의 오만이 신의 처벌을 초래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페르시아가 그리스 원정에 실패한 것은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의 오만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에게는 몰락에 이르게 되는 ‘성격적 결함’ 혹은 ‘비극적 결함’(hamartia)이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보편적인 결함을 ‘오만함’(pride)라고 생각하였다. 그 ‘오만함’이라는 인간의 약점이 역사의 기록 속에서 지적되고 있다. 역사는 그렇듯 구체적인 사실을 통해 인간을 탐색한다. 간혹 왜곡되고, 승자에 대한 아첨으로 퇴색하지만 역사는 인간의 모습을 과거를 통해 반추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미국의 흑인 소설가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은 다른 흑인 작가들과는 달리 백인에 대한 비난이나 저항보다는 한 사람의 미국인으로서 인종문제의 본질을 보려고 노력한 작가이다. 그는 역사에 대해 대단히 통찰력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니다. 아니 과거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 사실 역사가 강력한 힘을 갖는 까닭은 우리 안에 역사가 있기 때문이고,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말 그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안에 '현존하기' 때문이다.” 볼드윈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자신의 역사를 쓰고 있을지 모른다. 인종차별, 종교 간 갈등,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의 투쟁, 이 모든 것들이 현재 속의 역사이다.


역사가 가치를 지니는 것은 현재 속에서 의미를 지닐 때이다. 과거의 기록물들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역사를 종교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과거의 단편들이 현재와 일치되고 그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고자 노력하는 한 역사는 가치를 지닌다. 그 속에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반향 되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래서 오늘의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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