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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생각의 밥

회색 도시의 맥베스들

탐욕의 세상

by 최용훈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맥베스’(Macbeth)는 인간의 가장 오랜 결함인 ‘탐욕’을 그리고 있다. 물질에 대한, 권력에 대한, 섹스와 쾌락에 대한 탐욕 가운데 멕베스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권력’에 대한 탐욕이었다. 스코틀랜드의 충성스럽고 용맹한 장군이었던 맥베스는 마녀들의 예언 한 마디에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다: “장차 왕이 되실 분”(You shalt be the king hereafter.) 하지만 탐욕을 충족한 맥베스는 자신을 신뢰했던 왕을 배신했다는 자책감과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혹의 눈초리에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광기를 불러일으켜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살인으로 이어진다. 결국 파멸의 최후를 직감한 맥베스는 함께 살인을 도모했던 아내의 자살 소식을 들은 후 이렇게 절규한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이여./ 인생은 단지 걸어가는 그림자./ 제 시간 동안 으스대고 안절부절못하다가 마침내는 목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는 가련한 배우...”


맥베스의 탐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배신과 살인은 그의 본성이었을까? 아니면 탐욕을 일으킨 다른 요인들이 있었던 것일까? 왕이 될 것을 예언했던 마녀들은 선문답 같은 묘한 말을 남긴다. “옳은 것이 그른 것이요. 그른 것이 옳은 것이다.”(Fair is foul,/ Foul is fair.) 옳은 것과 그른 것은 본시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인 것일까? 충성스러운 장군 맥베스와 반역자 맥베스는 원래 하나였을까? 그렇지 않다면 무엇이 이 엄청난 변화의 동인(動因)이었을까? 외면과 실제의 차이인가? 가치의 혼동인가? 오로지 우리의 본성에 자리한 탐욕이란 괴물이 충성을 반역으로 바꾸고, 이성을 잔혹한 광기로 바꾸어 놓았던 것일까?


사실 탐욕은 인간에게 있어 영원한 ‘아포리아’(aporia, 막다른 골목) 일지 모른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질긴 운명 같은 것일지 모른다. 나이 들어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말하지만 어떤 계기만 되면 다시 스멀스멀 나타나는 것이 탐욕이니까. 그래서 탐욕에 빠진 노인의 모습을 노욕(老慾), 노탐(老貪), 노추(老醜)라 하지 않던가. 단 한 마디의 말에 탐욕의 포로가 된 맥베스처럼, 우린 아주 작은 꼬투리에도 쉽게 욕심의 흙탕물에 빠지기 마련인 것은 아닐까?


여(與)와 야(野)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이전투구의 정치판,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없는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배부른 장사치들, 자신의 진정한 소명(召命)을 가벼이 여기는 무수한 직종의 사람들... 그들은 모두 탐욕에 빠진 맥베스이다. 로마의 시인 세네카의 말처럼 “탐욕과 비교하면 다른 모든 본성은 아주 사소한 것이다.” 탐욕 앞에 정의도 사랑도 우정도 연민도 모두 부질없이 사라질 뿐이니까.


오늘의 삶을 돌아보며 탐욕이 불러올 우리의 미래를 걱정한다. 도시의 회색 건물 그늘진 모퉁이를 배회하는 수많은 맥베스들이 너무도 두렵다. 그들이 광기에 빠지는 날, 누군가는 암흑의 심연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절규 뒤로 맥베스의 독백이 이어진다.


“인생은 이야기/ 바보들의 이야기/ 아우성과 분노로 가득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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