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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말(馬)의 추억

조너선 스위프트 : 걸리버 여행기

by 최용훈

‘걸리버 여행기’(Gulliver’s Travels)를 썼던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아버지 없는 아이였던 그는 런던에서 교육을 받고, 아일랜드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런던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했지만 아일랜드 태생이라는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스위프트는 런던과 더블린을 오가며 정치 활동과 사제 생활을 하면서 영국 정부가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를 착취하고 있다는 강한 반감을 지니게 된다. 1724년에는 아일랜드에 유통시킨 영국의 화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드레이피어의 서한’(Drapier’s Letters)을 발표하였고, 2년 뒤인 1726년에는 인간에 대한 풍자와 조롱으로 가득한 ‘걸리버 여행기’를 출판한다. 그는 이 책의 집필 목적에 대해 “야만족 같은 인간을 화나게 하려고 썼다.”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1730년 대 말부터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던 그는 1745년 사망한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삶은 영국에 대한 애증과 조국 아일랜드의 현실에 대한 절망감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소인국(Lilliput)과 대인국(Brobdingnag),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Laputa), 그리고 마지막 여행지인 휴이넘(Houyhnhnm)의 4부로 구성되어있다.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로 당대의 영국뿐 아니라 유럽 국가들에 대한 조롱과 비난의 배경이 되고 있다. 특히 제4부의 휴이넘은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곳은 말들이 지배하는 땅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짐승처럼 사육하고 노예처럼 부리는 족속 야후가 사는 나라이기도하였다. 야후는 인간의 모습을 한 야만족으로서 스위프트는 그들을 통해 인간의 잔인성과 어리석음을 경멸하고 조롱하였던 것이다. 지배자 말(馬)의 입을 통해 묘사되는 야후의 모습이다.


“야후 쉰 마리가 족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다섯 마리에게 던지면, 그들은 평화롭게 음식을 먹기보다 음식을 모조리 차지하려고 조바심을 내며 싸움을 벌이기 시작하네. 때로는 명백한 이유도 없이 이웃 야후 간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지. “


세상에 먹을 것이 넘쳐나 쓰레기로 버려지는 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오늘의 현실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는가! 단지 영토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같은 종족과 싸우고 그들을 죽일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슬픔과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저열하고 잔혹한 동물. 인간은 이성을 지님으로써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오늘날 명분 없이 벌어지는 전쟁과 그로 인해 피 흘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여지없이 깨어지고 만다. 또한 인간이 얼마나 물질에 대한 탐욕에 빠져 있는지를 휴이넘의 고귀한 말(馬)은 이렇게 탄식한다.


"우리나라의 어떤 들판에는 빛나는 돌이 있네. 야후는 이런 돌을 끔찍이 좋아하지. 이런 돌이 우연히 땅에 박혀 있으면 그들은 종일 발톱으로 땅을 파서 그것을 꺼내고, 그들의 우리로 들고 가서 그것을 숨긴다네. “


인간 가운데 가장 커다란 부를 축적한 자가 현대의 신(神)이다. 인터넷 프로그램의 천재, 투자의 귀재, 부동산 거부(巨富) 등이 찬양받는 오늘날의 절대자들이다. 걸리버는 이렇게 말한다.


“유럽인은 가장 야만적인 야후에게 약간의 불완전한 이성을 가미한 동물이다. 인간은 타고난 야만의 속성을 개선하는 데 이성을 사용하지 않고, 그것을 더 악화시키는 데 사용했을 뿐이다.”


어디 유럽인 뿐이겠는가. 현대의 야후들이 흉측한 몰골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인터넷 검색 엔진 ‘야후’의 창업자들인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는 “인간은 이성만이 아니라 때론 한눈팔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했다던가. 혼자만의 즐거움이라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야만스럽고 잔인한 야후가 이 세상에는 왜 이리도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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