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용훈 Jul 31. 2022

조금 상한 들 어떻습니까?

고정희 : 상한 영혼을 위하여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For the Broken Soul

               Koh, Jeong-hee 


A broken reed, under the sky,

Freely shakes for a season.

Deeply-rooted,

It makes bud with its bottom cut. 

Shake freely, you broken soul.

Shaking freely, go to your agony.  


Even a floating weed without roots

Blooms when the water stays in.

As a brook runs anywhere in the world

And a lantern is lit anywhere in the world, 

Pain, come with me shoulder to shoulder.

Where can’t we go if we are resolved to be lonely?

Who cares the setting sun if we keep going at the risk of our lives?   


Flying over the land of pain and sorrow,

Stand on the field having deep roots. 

As the wind blows against the arms,

There is no eternal tears,

No eternal woes. 

Under the sky, even at night,

There comes a hand to hold yours. 


세상이 그런데 조금 상한 들 어떻습니까? 베이고 부러진들 아주 쓰러지기야 하겠습니까? 상처 입은 가냘픈 갈대조차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고, 뿌리마저 잘리어도 새순을 틔우는데 아픈 영혼인들 그리하지 못하겠습니까? 개울이 흐르고 빛은 여전한데 그깟 고통쯤이야 맞이한들 뭐 대수인지요. 외로움만 참을 수 있다면 어딘들 못 갈까요. 굳은 마음 여전하면 서산에 해 지는 풍경마저 아름답겠지요. 아픔과 서러움을 넘어 두 발로 굳건히 섭시다. 막아도 부는 바람처럼 눈물과 탄식 거두고 계속해서 가야겠습니다. 누군가 손 내밀어 흔들리는 나를 잡아줄 테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만남의 저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