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우리 엄마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우리 엄마의 경우에는 조금은 남들보다는 다른 불우한 가정 환경속에서 자라셨다.
아버지는 의처증이 있었고 , 어머니는 가정환경에 대해 잘 보살피지 않으셨다. 아들만 중요시하는 시대라
우리 엄마는 항상 찬밥 신세였고, 급기야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집을 나오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출을 하고, 놀이터에서 있다가 어느 봉고차에 타게 되고 그 봉고차는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이 가는 고아원으로
몇몇의 아이들을 태우고 갔다.
엄마는 고아원에서 몇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데 , 그 돌아오는 날도 따뜻한 환대가 아닌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였다. 그런 환경속에서 우리 엄마는 자랐다.
지금 생각하면 , 말도 안되는 가정환경이었다.
그런 엄마가 , 결혼을 하게 되는 건, 아빠를 만나고 나서부터인데 나와 같은 나이인 28살 무렵 결혼을 하셨다.
그 결혼 과정 속에서 , 나를 낳게 되셨고 , 그 다음으로는 2년 뒤 , 내 동생을 낳으셨다.
하지만 , 예상과는 다르게 아들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고 엄마는 그 수많은 시간동안 아들이 조금은 나아졌으면 하는 기대 속에 시간을 보내셨다.
아이를 복지관에 보내고 , 초등학교, 중학교는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시간 이상은 가야하는 먼거리의 학교를
동생은 다녔는데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먼거리를 통학해야 하는게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는 야박하며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지않는다.
뉴스에서 들었다. 장애 학교가 어느 동네에 설립이 되려고 하는데 그 동네 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진다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만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갈 곳은 한정이 되어있으며 , 그 아이들이 설 곳은 거의 없었다.
집 근처에는 당연히 그런 장애아를 위한 학교가 없었고, 엄마는 등하원을 같이 하다가 혼자서 학교를 보내게 되는데 하원을 할 때쯤이면 집에서 나가 동생을 받아야만 했다.
동생이 처음부터 장애학교를 간 것은 아니었다. 일반학교 특수반을 보냈지만 그 일반학교에서조차 우리 동생을 받아주지 않았다. 특수반은 특수반에 내내 있는 건 아니고, 일반반과 특수반을 왔다갔다 하는 형식으로 수업을
받았었다.
같은 반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의 수업에 방해가 된다며 건의를 했고, 그렇게 우리 동생은 쫓겨나다시피, 일반학교 특수반 조차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세상은 장애인을 편견하지 말라고 하지만, 조금만 들쳐보면 우리는 너도나도 장애을 가진 사람들을 기피하고 있고 상종하지 않으려한다.
오히려 그 말이 더 이상하다. "장애인을 편견없이 대하자"
이 말이 장애인과 일반인을 갈라놓는 말이라고 생각이 든다. 똑같은 인간인데 왜 종류로 나뉘어서 편견을 없애자고 하는지 , 이 인식 부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 동생이 장애를 가져 세상의 씁쓸함과 슬픔을 알게 되었고 , 한편으로는 내가 정상인으로 태어난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 드는 생각은, 아직 세상은 바뀌지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초조하고, 걱정스럽다.
조금 남들과는 다른, 남들보다 느리게 걷는 , 느리게 성장하는 이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걱정이 되는데, 나는 내가 쓴 글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은 바뀌었으면 한다.
발달이 느린 아이, 언어에 문제가 있는아이 , 혹은 다운증후군, 뇌성마비, 정신지체 , 지적장애 등
장애를 가진 이들은 이 세상에 많다.하지만 그들은 이 세상에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들의 세상은 이 세상과 다르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데도 세상은 그걸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는 조금만 이 세상이 그러한 아이들을 보살펴 주길 원하고
다르다며 손가락질 하지 않기를 바란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까지 부족한 것은 아니며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지 않는다.
정상인도 살기 힘든 각박하고 힘든 세상에,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단비가 내려졌으면 한다.
그들도 역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에 잘못 태어난 존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