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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Nov 07. 2020

퇴사해도 잘 살아 보이고 싶었습니다

퇴사를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는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나 공부를 아주 못할 때도 있었고, 남들이 하는 정도인 중간 정도 공부를 하는

사람이었다.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딱 그런 중간에 있는 아이이다 보니,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미래에 대한 꿈이 많이 없어서인지 작가라는 꿈을 꿔왔어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라는 그런 다짐은 하지 않았었다.

딱 , 평범한 어쩌면 남들보다 평범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그런 유년 생활을 해왔었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격증을 우선시하는 소위 말해 학점은행제 같은 전문학교를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자발적인 시도가 아닌 아버지의 추천으로 가게 된 것이라, 나에게 맞지 않은 과를 가게 되었고 나는 그 과를 졸업한다고 해도 내 적성에 맞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후로, 나는 학교를 다니는 것을 포기하고 휴학계를 내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간호조무사 자격증 학원에 다니라는 부모님의 추천에 학원에 다니면서 일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나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대학을 다닐 무렵에 나는 취직을 해서 일을 다니게 되었다.

또래들보다도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 나이가 아마도 20살 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학원을 다니고,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며 시험 준비를 했고 1년간의 공부 끝에 시험에 합격해 본격적으로 직장인길에 걷게 되었다.

다른 이들은 대학원도 가고, 해외로 여행도 가고, 많은 것을 할 나이에 나는 오로지 돈을 벌었다

그때만 해도 나에게는 꿈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 설사 꿈이 있다고 원하는 꿈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어차피 할 수 없는 꿈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할 일은 여기 까지뿐이라며 , 일을 해왔고 충주에 내려오고 나서도 나는 병원일을 계속 해왔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싫증을 잘 내는 타입이라 한 가지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일을 하고 싶기 마련인데 나는 그 무렵쯤 다른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브랜드 옷가게 영업직을 하였고 그 기간은 거진 1년이 가까운 세월이었다.


하지만 그 선택마저도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월급이 점차 밀리기 시작해 일상생활이 되지 않았고 일을 그만두고 병원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지금의 신랑을 만나고 결혼을 하게 되고 첫째를 낳아 육아를 하게 되었는데 집에서만 집안일을 하는 것 자체에 염증이 났는지 나는 고객 상담직이라는 일을 알아본 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는 육아맘들에게 유익한 일자리이고, 거기다 자격증을 따면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 일은 바로 보험 영업직이었다. 상담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말로써 당사 회사 보험에 가입한 고객들을 관리해주는 직이라 말을 했지만 사실상, 영업이 필요한 직이고 발품이 필요한 직업이었다.

뭔가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 대 효율로 봐서 이런 직종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진 1년 동안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을 하면 할수록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으며, 나는 그런대로 상위권에 속하는 일 열심히 하는 직원, 계약이 나오는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속았다는 그런 찝찝기분에 퇴사하고 싶었다.


사실, 간호조무사란 직업으로 200 이상의 급여를 받기란 쉽지 않은데, 보험 영업직을 하고 나서는 200 이상의 급여를 받았었다. 그래서 그런 급여로 인해 내가 나를 속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일을 해야만 한다는 그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시기에 코로나가 더 크게 터지고 어린이집 휴원으로 인해 나는 일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회사에 내비쳤다.

회사에서는 나를 위하는 척하면서 가스 라이팅 같은 요법으로 그만두지 않기를 원했다.

대부분의 말이 그랬다.


"효정 tc님 이거 그만두면 다른 일 해도 어차피 그만두고 싶은 상황이 생길 거예요"
"너 이거 그만두면 다른 일 하기 힘들 텐데, 다시 병원일 한다고 해도 풀 근무해야 할 텐데 넌 어차피 못하잖아"

"그냥 나랑 같이 일하자, 다른 직업으로 가기에는 좀 그렇기도 하다 "


그렇게 내가 이 직업을 안 하면 마치 큰일이 당장이라도 생기고 생활이 궁핍해지기라도 할 듯이 나를 퇴사하지 못하도록 종용했다.

하지만 그런 설득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내, 이 일만은 내 직업이 아님을 깨닫고 그만뒀다.


그만두는 시점에서는 내가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해서 내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다른 직원들이 이야기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들이 앞섰다. 그냥 일하면 되는 걸 왜 퇴사를 해서 , 생활을 망쳐 이런 험담을 할까 봐 고민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험담을 할지언정, 나는 그 회사를 다녀도 행복하지 않음을 늘 느꼈다. 계속되는 영업직의 압박과 고객들과의 약속이라도 있는 날이면 나는 아이들을 늦게까지 어린이집에 있게 만들어야 했고 일하는 동안은 내가 죄인처럼 느껴져 그 부담을 덜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런 압박들과 환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퇴사하기로 정했다.


퇴사를 하고 육아맘으로 돌아서던 날 나는 카톡 프로필을 통해 그들에게 나는 퇴사해도 잘 살고 있다고 보이기를 원했다.

마치 세상에 돈이 전부인 듯, 표현하는 그들에게 나는 적어도 당신들 만큼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그런 다짐뿐이었다.

지금도 내 프로필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있다는 프로필로 , 그리고 카카오톡 채널에 메인이 되었다는 자랑 글로 , 그리고 하나의 글로 2만 명이 넘은 조회수를 찍은 이미지로 혹시라도 나의 카톡 프로필을 들여다보는 그들에게 일부러 보여주고 있다.

퇴사를 해도 그들에게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나서 나는 일이 오히려 잘 풀리고,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운동과 작가라는 꿈을 다시 꾸게 된 것이라고 ,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이 시기에 퇴사를 생각하려는 많은 이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퇴사를 한 용기 있는 자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제 당신들은 그들을 괴롭히는 환경으로부터 드디어 벗어났다는 말을 건네주고 싶다. 그리고 퇴사라는 그 짧은 단어로 인해 자신들의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도 건네주고 싶다.

퇴사하면 일을 하고 있는 그들보다 내가 더 못 살아갈 거란 보장은 없다. 물론 일시적으로 돈의 압박은 있겠지만

아이유의 분홍신 가사의 내가 좋아하는 구절처럼,


"눈을 감고 걸어도 나는 맞는 길을 고르지 "


그대들은 눈을 감고 걸어도 자신에게 맞는 길을 고르는 능력을 이미 지니고 있다.

그러니 , 자신들의 선택을 믿고 존중해주었으면 한다. 퇴사는 사실 별 일이 아니기에.

그리고 자신들의 선택을 믿고 밀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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