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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Nov 09. 2020

아빠 차의 운전석 위에는 내가 있다

딸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는 다정한 아빠

나는 이제 내년이면 32살의 나이인데,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고 편하게 대해 주시는 모습에

아직까지 아버지에게

"아빠"
"아빠 나 오늘 빵 좀 사줘, 과자 사줘 " 이런 종류의 말을 거리낌 없이 한다. 누가 보면 철이 없다고 하겠지만

나이를 먹었다고 아버지와 거리를 두는 건 아닌 것 같아 결혼을 하고 애를 둘이나 낳은 엄마인데도 나는

아빠에게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

내 밑으로 있는 남동생은 지체장애,언어장애, 자폐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동생이기에 아빠의 소원은 어느 날 동생이 입을 열어서 말을 무척이나 잘하게 되기를, 그동안 못해왔던 혹은 우리가 모르는 일들을 다 말해주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하지만, 그 꿈이라는 게 이뤄질 수 없는 꿈이기에 우리 가족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넷이 다 모였을 때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나는 말을 하지 못하는 동생을 데리고 다니며 과자나 음료수 같은 것들을 사주고 , 놀이터에 데리고 다니며 같이 놀아주었다.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운동회였는데 보통 다른 엄마들이라면 운동회에 갓 만들어온 김밥과 후식으로 먹을 상큼한 과일을 싸와서 자식들에게 먹이기 바쁘겠지만 동생을 봐야 하는 엄마로서는

시간이 나지 않아, 나는 그 운동회날 철봉 근처를 배회하며 혼자 다녔었다.

그런데 이 기억은 나에게만 있는 기억인 줄 알았는데 아빠는 어떻게 아셨는지 어느 날 갑자기 이야기를 하시며

내가 불쌍하고 안쓰럽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 나이 때에도 그렇고 지금 현재에도 그렇지만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불쌍하고 안쓰러운 걸로 치자면 장애아라는 사실을 알고 몇 년 동안을 절망과 한탄 속에 세월을 보냈을 부모님이 더 불쌍했다.

그렇게 조금은 특별한 아들을 낳고, 그 동생을 보살펴 주는 내가 애틋하고 이쁜 마음에 아빠는 회사 모임이나 어딘가 볼일을 보러 가실 때도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그렇게 20살이 넘도록 같이 다니다 보니, 엉뚱한 시선을 받기도 했는데 같이 손을 잡고 다니면 다른 사람들은 딸인지 모르니 아빠의 애인이라고 잘못 오해했을 정도로 아와 나는 무척이나 친했다.

그런 시선에 당황스럽기도 하였지만 그런 오해쯤은 누구라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은 가볍게 웃어넘긴다. 이런 기억들도 우리 가족들에겐 웃음을 머금게 하는 추억이었다.


직장을 다니고, 아빠와 같이 다니는 시간이 점점 더 없어지고 결혼을 했을 무렵에는 아빠와 약간의 서먹한 감정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자주 못 보고 더 자주 대화하못하니 서로에게 말을 하는 것 자체가 혹여라도 실수라도 할까 봐 그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런 분위기를 풀기 위해 나는 더 아빠에게 장난을 쳤다. 신랑과 같이 하는 술자리에서는 아빠는 신랑에게도 딸은 내 분신이었다며 , 어딜 가던지 늘 데리고 다녔다고 자랑 섞인 말씀을 하셨다. 그만큼 아빠에게 나는 자신의 존재보다도 더 귀한 존재였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 일이다. 장애인 시설에 있는 동생을 만나기 위해 시설에 가던 중이었는데 아빠가 사진 하나를 보여주셨다.

둘째가 널 많이 닮은 것 같다며 예전 사진을 보면 너 판박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정말 날 많이 닮은 지 보려고

사진을 보는데 그 사진은 나의 유치원 때 찍은 사진으로 호국원 같은 곳에서 기도를 드리며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은 그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바래고 낡았으며 겉은 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낡아있었다.

당장이라도 몇 년 더 지나면 아예 사진 자체가 없어질 것 같은 그런 낡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아빠의 운전석 위 , 사진을 꽃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곳에 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 , 사진이 있는 위치를 보고 나는 뭔가 벅차오르는 , 주체할 수 없는 그런 감정에 사로 잡혔다.


"아빠는 어딜 가든 나와 함께 가시는구나. "

"이 차에는 내가 아빠의 분신처럼 혹은 부적처럼 내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빠가 날 얼마큼 생각하시는지 알 것 같아 마음이 약간 슬프기도 했다.


그리고 다짐을 했다.

아빠가 그 어렸을 적의 나를 아끼고 키워주신 것만큼, 무슨 일이 있을까 봐 지켜주셨던 것만큼 이제 차의 운전석 위에 있는 그 사진의 기도드리는 아이는 31살의 엄마로 컸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아빠를 지켜드리겠다고 말이다.

가끔은 철이 없는 아이 같이, 어느 날은 따뜻한 딸처럼 , 그리고 그 어떤 날은 다정한 아빠와 같은 모습으로

아빠 곁에 오랫동안 남고 싶다. 그리고 내가 아이에게 내 진심을 전했던 말처럼


"나는 아빠가 안 다치고 안 아프고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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