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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Nov 23. 2020

너의 행동이 들리기 시작했어

아이의 자신감을 키워주는 일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나의 예전 어릴 때 모습과 겹쳐서 보이기도 하고, 아이가 춤을 추고 노래를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면 과거의 나도 이러지 않았을까 라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이는 부모의 어렸을 때의 모습과 행동이 비슷하다고 들어서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나에게 보이지 않았던 성격과 모습들은 신랑을 닮았을 거라 생각했고,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할 때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를 통해 나를 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단지 조금 다른 거라면 신랑과 나는 돌이 되기 전에 걷고 말을 잘했는데 첫째와 둘째는 그렇지 않다는 점, 어떤 점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발달이 느리게 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오늘은 센터에 가서 상담을 하고 상담 중에 그런 말을 들었다.

아이가 자신감이 부족하다 보니, 어떤 놀이를 할 때 뜻대로 되지 않으면 포기하고 못하는 것을 연이어서 계속 시키게 되면 아이는 흥미를 잃고 하기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짜증을 내어도 과격하게 내는 게 아닌, 소심하게 짜증을 낸다고 집에서 행동도 이렇지 않냐고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봤을 때 적어도 내가 첫째의 모습이라면 나 역시도 자신감이 많이 부족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아이들이 걸을 때 우리 아이는 혼자서 앉기 시작했고 두 돌이 훨씬 지난 3세가 될 무렵에 걷기 시작했으니 그 발달 관계에 있는 놀이에서도 분명 다른 모습을 보일 거란 예상은 했었다.

그렇다 보니 어린이집에 상담을 하러 갈 때마다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하였으며 담임 선생님이 대강 아이에 대해 어떤 말을 하실지 예상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걱정이 아닌


"인덕이가 정말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다른 아이들보다 반에서 제일 좋아졌어요"


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면 그날 이후부터 며칠 동안은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 한편에서는

불안감이 올라왔다.

그 불안감으로 인해 아이가 어린이집서 활동한 사진들을 홈페이지를 통해 보고 있으면 다른 아이들은 뛰고 점프하고 즐겁게 노는데 뭔가 주저하고 적극적이지 않는 아이를 볼 때면 혹시나 소외감이 들지는 않을까, 자신이 못한다고 자존감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항상 나를 괴롭히는 건, 다른 아이들과 동떨어져있을 아이의 모습이었다. 아이는 나의 예상보다 훨씬 잘 지내고 있지만 나는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만큼은 마음을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항상 미안했고, 동시에 나의 어렸을 적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칭찬이랑은 거리가 조금 먼 아이였다. 그래도 뭔가 열심히 하면 그 과정에서는 인정을 해주시는 부모님이셨지만 나에게는 칭찬이란 단어는 부족했으며 어색했던 단어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 흉을 보는, 내가 공부를 잘 못한다고 말하는 엄마가 밉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물론 엄마는 그 상황이 힘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을 털어놓았겠지만, 아이가 옆에 있을 때 남에게 아이의 흉을 본다는 것은 "


"쟤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얼마나 말을 안 듣는지 몰라 재는 왜 저러는지 몰라"


이런 말은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렇게 듣고 자라왔기 때문에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친구 같은 부모가 되겠으며 훈육 과정 중에 아이에게 화내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나 육아 과정에서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아이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과정은 단지 내 안에 있는 화를 분출하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었다.

오늘의 상담을 통해 나는 그동안 내가 어떤 식으로 육아를 했는지, 그리고 나 역시도 아이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후회들이 몰려왔다.


육아를 하다 보면 누군가 옆에서 코치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상황에서는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아이와의 놀이 과정에서도 이렇게 놀아주면 더 좋다는 그렇게 말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라도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로봇이 탄생하려면 먼 훗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모의 말 한마디로 인생이 변하는 아이들이기에, 나 역시도 아이를 위해 조금 더 아이에게 기회를 주고

뭔가를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옆에서 지지해주고 도와주어야 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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