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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인 Dec 06. 2020

"여기 소주 한 병만 주세요!"

약은 약사에게, 소주는 술집 직원에게

20살이 될 때는 세상에서 허락되는 것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술집에 들어가는 것도 자유이며 핸드폰을 원하는 기종으로 바꿀 수 있는 자유도 더 이상 미성년자가 아니라는 자유도 있다.

나 역시 20살이 되었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은 술집에 들어가도 민증 검사 하나만으로 내가 떳떳해질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20살 때부터 술을 즐겨 먹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 가장 좋았던 것이 있었다면 친구들과 거리낌 없이 술집에 들어가 먹고 싶은 안주를 고르고 어떤 술을 먹을지 정하는 일이었다.

단순히 술을 먹기 위해 술집에 들어갔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와 고등학교 때 친구 두 명은 같이 어울렸던 다른 친구들보다  직장을 빨리 들어갔기에 사회생활을 조금 일찍 시작하는 편이었는데 그렇다 보니 서로의 일이 끝난 후, 일주일에 두세 번을 만날 정도로 우리는 자주 만났었다.

그리고 서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들어간 곳은 근처의 술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딸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서 오세요 라는 말과 함께 몇 분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원하는 자리로 들어가서 앉은 후에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가던 술집은 역 근처이다 보니 어딘가를 가던지 사람들이 많았었다.

나이 연령대는 젊기도 했었고, 중장년층도 있었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본 후 외투를 벗고 친구들에게 잘 지냈냐는, 요새는 어떻냐는 남자 친구와는 잘 사귀냐는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우리 뭐 먹을까"라는 말에 술집에 메뉴판을 집중한다.


  ( 출처: 알게 뭐야 홈페이지)


그렇게 무엇을 먹을지 고민을 하다가, 가장 만만하고 실패 확률이 낮을 탕 하나와 메인 안주요리를 주문한다.

그리고 소주도 주문한다.

술이 약한 친구는 매화수나, 청하를 위주로 먹었지만 보편적으로 우리는 소주를 많이 먹었다.

기본 반찬들이 세팅이 되면 하나둘씩 집어먹은 후에, 서로의 잔에 소주를 따른 뒤 "짠"을 한다.

"짠"이라는 단어 뒤에 우리는 그 뒤로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눴던 이야기들은 서로의 직장 이야기와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보통 이야기들과

다른 분위기 좋은 술집 이야기, 언제 날을 잡고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로나로 인해 술집과 모임이 꺼림칙해지게 된 시기에 꿈같은 이야기들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2020년에도 나는 친구들을 다시 만나 결혼하고 나서의 이야기들을 나누고 결혼을 하고 싶은 친구와 하고 싶지 않은 친구들에게 결혼 후의 삶이 이렇다며 동시에 내 아이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래도 결혼은 할만한다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썸싱과 직장 이야기, 어딘가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를 부러워할 것이다. 나도 가끔은 어딘가를 가고 싶지만 아이들로 인해 자유롭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얘기 도중에 다음은 어디서 만나서 어디를 가자는 이야기도 할 것이며, 탁자에 마스크를 내려놓았다가

술집을 나서기 전에 " 아 내 마스크 어디 있지"라고 찾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술은 근처 마트에도 있고 집 앞에 편의점에도 대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집에서 술을 먹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즐거웠던 내 20살 이후의 마스크 없이 다니던 때를 생각하면 그 때가 그리워 질때가 있다.

어딘가에 들어가서도 다른 사람들을 의심하지 않고 그들의 콜록대는 기침소리에 불쾌해하지 않으며 옆 테이블과 거리가 가까워도 불안하지 않는 시절들이 있었다.


"소주 한 병 주세요"라는 말을 하며 많은 이들과 한 공간에 있고 친구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서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임에도 맞장구를 쳐주고 서로의 잔이 비었을 때마다 술을 채워주던 그 시간들이 참으로 그립다.

나는 술을 자주 먹는 주정뱅이 까지는 아니지만 , 술자리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테이블을 둘러서 앉은 사람들과 혹은 나의 연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평소에 못했던 말들도 했었던

술자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애틋해진다.



그 시절에는  9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거리는 밝으며

그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은 사이가 좋은 커플들과 풋풋한 어린 대학생들, 한 손에 양복을 걸친 많은 중장년층 신사들과 언제나처럼 아웃도어 룩을 입고 아저씨 티를 내는 수많은 아저씨들과 오늘만큼은 화장과 헤어를 단장하고 친구들 혹은 친한 엄마들과 모임을 나서는 이들이 걷고 있었다. 지친 얼굴이지만 회식을 즐겁게 하는 직장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거리에는 그런 이들을 보기 힘들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거리와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마스크를 한 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보다는

이제는 더 이상 마스크를 하지 않으며, 술집뿐만이 아니라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남을 의심하지 않는 마음이 아닌 따뜻한 사람들과 무언가를 먹으러 왔다는 행복함으로 취하는 미래가 왔으면 한다.


그리고 그러한 힘든 시기들을 견뎌내고 나의 연인이나 친구들과 술집에 들어가 자리에 앉은 뒤 큰소리로 말하고 싶다.

"여기 소주 한 병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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