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용환 Feb 19. 2021

필명이 좋아? 본명이 좋아?

필명에서 본명으로 바꾼 이유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처음에는 '데이먼 k'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필명으로 결정한 데이먼은 내 영어 이름이다. 20대와 30대 초반까지 새로운 삶을 꿈꾸며 나를 따라다닌 이름이고 지금도 처가집에 캐나다에 가면 '데이먼'이라고 나를 부른다.

멈춰있는 것 같은 지금의 삶을 과거를 통해 다시 가슴 뛰게 해주는 가명 이다.


하지만 필명 때문인지 나는 가볍게 생각하면서 브런치를 손님의 마음으로 어슬렁거렸다. 처음에는 무조건 글을 작성할 수 있는게 아니고 '브런치 작가'로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기에 긴장도 했지만, 신청하고 한 번에 '고용환 작가님'이라는 메일 받았기 간절함이 부족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후에 검색을 해보니 브런치 작가를 떨어졌다는 사람들도 찾을 수 있었다.


'아......... 그냥 통과시켜주는 건 아닌가 보구나'


그 순간 약간 책임감과 미안한 마음이 공존했다. 그래서 컴퓨터 폴더 서랍 속에 잠자고 있던 나의 글들을 복사해서 하나씩 발행하기 시작했다. 일주일도 안돼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브런치 알람은 나를 혼내 듯이 울려댔다.


'신기하다. 다음 메인에 글이 올라가면 이렇게 한 순간에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는구나'


그 중독성에 빠져서 글을 점점 과감성으로 무장했다. 관심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욕구였을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 과감성은 과장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진솔함은 어디로 갔지?"


나에게 글쓰기는 위로와 위안이었는데 이것마저 이렇게 변하면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은 위기감을 느꼈다.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나는 프로필을 수정을 클릭했다.


얼굴을 공개하고, 데이먼 k라는 필명을 본명으로 수정했다. 나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어야지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나를 공개하고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더 쉬워졌다.  포장하고 싶은 내용들과 거품 없이 어찌 쓰나 했는데 글에 오히려 알몸이 된  편한 마음으로 경쾌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니 분의 독자분들에게 칭찬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진심은 '인기글'이나 '다음 메인' 노출반응이 나타났다.  


항상 뒤에서 숨어서 살고 있기에 여기에서 만큼은 숨어 있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사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에 흐르는 만큼 다양한 가면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가? 나도 몇 개의 가면이 내 얼굴 앞에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직장에서 나의 모습, 친구들과의 내 모습, 가족 속의 내 모습, 그리고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 앞에서의 나의 모습 정말 역겨울 만큼 다르다. 이제는 생얼굴로 다니는 것이 어색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 곳에서 만큼은 답답한 가면을 벗기로 한 나의 선택은 옳았다.


본명 공개 후 조회수가 많은 글이 노출되면 브런치를 하지 않는 지인들도 나를 알아보고 카톡이나 전화가 오는 횟수가 늘어난 것은 부담감으로 작용을 했다.


몇 명의 지인들은 이렇게 물어봤다.


"고 작가님, 글 잘 봤습니다. 형님 잘 지내죠? "

"너 힘들었구나, 왜? 말하지 그랬어? 가족분은 잘 계시고?"

"돈 많아? 많은 것 같은데? 얼마나 있어?


이런 연락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가면을 다시 쓰려고 하지만 브런치에 대놓고 공개된 내 모습 때문에 조금은 솔직해졌다.

예전이라면 숨기고 숨기려고 다른 가면을 찾고, 어색한 변명이나 거짓말을 늘어놓았을 텐데.......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고,

글쓰기를 좋아해서 출판 계약도 했다고 말할 수 있고

열심히 살아서 모은 부끄럽지 않은 돈도 좀 있다고 말할 수 있어서.......


그래서 정말 다행이다. 어느덧 40대를 가깝게 바라보는 지금이라도 솔직함을 배울 수 있어서 고맙다.


https://instabio.cc/yhjade


이전 03화 브런치 1분기 보고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