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용환 Apr 03. 2021

남자끼리 교환일기를 주고 받으며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이유

나에게 글쓰기란 특별한 의미와 추억을 가지고 있다. 84년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가정형편과 부모님의 무관심으로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한글을 전혀 쓰지 못했다. 만약에 사춘기라는 감정변화와 성장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알림장을 칠판에 적어주는 선생님이 항상 미웠다. 이유는 글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보면서 적다 보면 어느새 칠판에 남은 글자는 사라지고 뿌연 연기를 먹은 초록색으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면 언제나처럼 어머니는 옆집이나 뒷집 이웃을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리며 알림장을 적어오곤 했다. 사실 한글 쓸 수 없다는 것은 숙제도 엄마가 대신했다는 것이기도 하다. 멍청한 건지 바보인지 나는 부끄럽지도 않았다. 그냥 주변에는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친척형이 많았고 학교를 마치고 오면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거나 친구들이 집에 들어가면 성인이 된 친척형들 배달을 따라다니곤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가기 전에 갑자기 쪽팔림이라는 놈이 나를 찾아왔다. 아마 기억을 더듬어보면 좋아했던 여자애가 한글을 못 쓴다고 나를 놀렸던 것이 이유가 된 것 같다.

이대로 중학교를 가면 친구들이 나를 바보라고 놀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미친 듯이 한글을 알려달라고 엄마를 포함해서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집구석에 처박혀 있던 동화책들을 집어 들고 무턱대고 받아쓰기를 시작했다.

별로 써본 적 없는 글자체는 발로 쓴 건지 두 손가락을 쓴 건지 구분도 하기 힘들 정도로 흉했다.


그래서 주변에 이쁘고 멋진 글자체를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이상형에 가까운 글자체를 발견할 있었다. 바로 엄마의 글자였다. 흘림체인데 보통 여성의 글자처럼 귀엽지 않고 강하고 개성있어 보였다. 나는 엄마의 노트를 앞에 두고 필체를 따라 쓰면서 동화책을 매일 밤 받아썼다.


단기간 벼락치기 치고는 노력이 가상했는지 다행히도 글을 조금이라도 쓸 수 있게 된 상태로 중학교를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를 들어가서 글을 읽게 된 것에 흥분돼서 쉬는 시간에도 교과서를 틈나는 대로 읽고 또 읽었다. 주변 친구들은 내가 우등생일 거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방 진실은 들어났다. 첫 중간고사 시험이 시작되었다. 순수했던 건지 태생이 멍청한 것인지 하루 3과목 3일 동안 시험을 보는데 나의 평균은 매일 높아졌다.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던 아들의 성적이 궁금했는지 시험을 마치고 오면 평균이 어떠냐고 부모님이 물었다.


나는 첫 시험에서 3과목의 가채점 점수를 더하고 3으로 나누기를 하고 계산한 결과를 말했다.


"엄마! 평균 68점이야."


엄마는 응원하듯이 '내일 더 잘 보면 평균 70점 넘겠네'라고 말하며 응원을 해주셨다.


다음날 세상에 기적이 발생했다. 평균이 거의 90점이 된 것이다. 나는 시험을 마치고 뛰어서 석유가게로 가서 자랑하듯이 말했다.


평균이 거의 90점이야.


"세상에 우리 아들이 이번 시험들을 거의 100점을 맞았나 보네." 이렇게 말하며 흥분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니 괜히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둘째날 시험을 본 과목들도 점수는 60점 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뭐가 문제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 날밤 내 소식을 전해 들은 친척형이 칭찬을 해주러 집에 찾아왔다.

그리고 채점 된 6과목의 시험지를 보더니 뭔가 이상했는지 나에게 물었다.

"이거 채점 결과가 맞아? 근데 너 평균 어떻게 계산 했어?"


나는 계산한 방법을 설명했다. 지금까지 총 6과목 봤으니 총점에서 3으로 나눴다고 설명했다.

형은 웃으면서 작은엄마를 외치며 내 방을 나갔다.


그날 밤 저녁식사에서 나의 실수는 에피소드가 되어 어른들은에게 엔돌핀을 선서해 주었다.


한글을 늦게 배우니 당연히 수학이나 기타 과목에 대한 이해력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웃기면서 슬프게 시작한 나의 중학교 생활에서 우연히 동네에 같이 사는 우등생 친구와 앞 뒤로 앉게 되어 자연스럽게 절친이 되었다. 전교에서 항상 1등이나 2등을 하던 그 친구와 함께 지내면서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방학이 시작되기 며칠전 친구는 나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 집도 가깝고 하니까 방학 때 일기를 써서 매일 밤에 교환해서 서로 보면 어때?"  


지금 생각하면 남자 둘이서 일기 교환이라니 우습고 먼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당시 너무 좋았다. 매일 열심히 일기를 썼다. 그리고 저녁 8시에 노란색 따뜻한 불빛이 아래로 비춰지는 전봇대 앞에 매일 만나서 서로의 일기를 교환했다. 그 친구는 글 체도 이쁘고 일기의 내용도 정말 교과서처럼 가지런했다. 반면에 내 생각에 내 일기는 초라해보였다. 맞춤법도 엉망에 요점도 없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도 없고 그냥 하루를 Ctrl + v 한 것 같은 일기였다.


방학이 끝날 무렴 그 친구는 내 일기장 뒷면에 장문에 글을 써서 줬다.


"글이 참 읽기 편하고 먼가 느낌이 편해. 소질있는거 같아.

 일기 읽을 때 너무 재미있었어"


전교 1등에게 칭찬을 받으니 나는 정말 황홀했다. 아직도 그 일기장을 가지고 있다. 지금 보면 웃음만 나오지만 곧 나의 첫 번째 책이 태어나는 이 시점에 쑥스럽고 부끄럽던 과거가 왠지 지금의 나에게 잘했다고 엄지척을 하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그 친구의 칭찬이 없었다면 나는 그 이후에 일기를 계속 쓰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글쓰기가 절대 취미로 남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오만함과 서로의 길이 틀려서 우정이 틀어졌고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지만 나중에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된다면 고맙다고 전하면서 내 책을 그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



#보잘것없는사람 #에세이 #교환일기 #글쓰기 #고용환 #칭찬

http://m.yes24.com/Goods/Detail/99272994


<이미지 출처: google.co.kr>


이전 04화 필명이 좋아? 본명이 좋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