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랑 시간 보내니 좋더라

8화 보잘것없는 사람 - 마지막 가족여행

by 고용환


아버지의 퇴원과 동시에 남은 휴가를 다 써서라도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아버지 머리에 남은 큰 수술 자국은 매 순간 마음을 아프게 했다. 모자를 사드리고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어색한 시간이었다. 사실 가족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버지가 아프기 전에 내가 몇 번 주도하여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바쁘다고 열외 했다. 어머니 모시고 다녀오라고 할 뿐이었다. 솔직히 서운한 감정보다는 그냥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어색할 수도 있으니 두 번 이상 물어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조수석에 앉아 있는 아버지는 행복해 보였다. 항상 듣던 이야기지만 아버지 형제들에 대한 불평을 시작으로 석유 장사할 때 전단지를 잘 만들어서 매출이 올랐다는 이야기 등을 끝없이 이야기하셨다.


지인한테 소개받은 깊은 산 속에 위치한 황토집 펜션에 도착했다.

삶을 즐길 여유보다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면서 살던 우리 가족은 노는 방법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짐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것들을 황토방에 옮겨 두니 주인집 아주머니가 오셔서 아궁이에 불을 피웠으니 따뜻할 거라고 말해 주셨다. 아버지가 아프다는 것을 말씀드리니 아랫목에 솔잎으로 자연 침대를 만들어 주셨다. 거기에 누워서 땀을 빼면 몸이 한결 가벼워질 거라고 하셨다. 아버지를 모시고 방에 들어가서 자리를 안내하고 눕게 해 드렸다. 저녁 준비할 테니 잠시 눈 좀 붙이라고 하고 방을 나왔다.

동생과 함께 숯을 피우고 저녁 준비를 했다. 한 시간쯤 지나서 아버지가 땀에 흠뻑 젖어서 나오셔서 말했다.


“이거 너무 좋다. 너희들도 들어가서 좀 누워 봐.”


행복을 느끼는 듯 아무런 말없이 음식을 먹던 중 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좋지? 가족이랑 시간 보내니까 어때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셨다. “좋네.”

표정에는 평온함이 묻어 있었다. 아버지도 알고 있었다. 이 시간이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내 소주잔은 그간의 서러움을 달래듯 비워지고 술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빠는 아무런 걱정도 안 됐어? 그동안 왜 간섭도 참견도 안 한 거야?”


술기운을 빌려 내가 물었다.


“그건, 네가 다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까, 내가 뭐 그다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충격적인 답변이었다.

칭찬처럼 들리지만 왠지 모를 원망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들인 내가 어른 흉내를 내며 아버지가 서 있을 자리를 뺏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아버지를 원망하기 전에 나의 오만함이 한 남자를 겉돌게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안했다.


적막이 흐르고 아버지는 말했다.


“네가 잘해 줘서 정말 고마웠고 든든했어.”


간암 환자인 것을 떠나서 안 된다고 거절할 수 없었다. 오늘은 한 잔 드려야만 했다. 암이 뇌로 전이되기 전에는 그래도 나을 수 있다는 약간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아버지에게 담배도 피우지 말고, 술도 먹지 말라고 강요하면서 잔소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집 주차장 구석에 한 남자가 꾸부정하게 벽을 보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바로 아버지였다. 다급하게 무엇을 숨기는 듯했다. 바로 막걸리였다. 안주도 없이 혼자 숨어서 마시고 있던 것이다. 얼마나 눈치가 보였으면 저리도 초라하게 그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차갑게 말했다.


그런 아버지가 큰 고비를 넘기고 이렇게 가족 여행에 함께하고 있다니… 기쁜 마음으로 한잔 따라드렸다.


“맛 좋다, 오늘따라 참 더 맛있네.”


막걸리 한잔에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먼 산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참 행복해 보였다. 죽음과 친구 사이가 되고 마시는 막걸리의 맛은 어떨까? 아버지는 수천 번도 더 들었던 인생의 성공할 뻔했던 이야기를 해 주셨다. 반대로 말하면, 성공하지 못한 실패의 경험들을 말해 준 것이다. 너무도 많이 들은 이야기기에 다들 건성으로 흘려들었다. 결말은 언제나 뻔한 후회 덩어리인 이야기였다.


서로에게 상처가 아닌 위안과 격려를 해 주는 따뜻한 밤을 보내고 우리 가족은 행복한 잠자리를 가졌다. 항상 오늘처럼 가족의 향기가 넘치는 날이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있는 시간이 모자란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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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goo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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