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캐나다에 가서 살까?

9화 보잘것없는 사람 -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어

by 고용환


다 함께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시간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아버지가 거실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동안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가 말은 안 했지만 이 시간을 즐기기로 한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물었다.

“혹시… 캐나다에 가서 살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아버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좋지, 그 나라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살기 좋은 나라잖아.”


아버지는 내가 물어보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여자 친구는 캐나다 사람이었다. 교제한 지 1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입원했을 때 병문안을 온 적도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은 꼭 한국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외국인과 결혼해서 이 지겨운 현실은 벗어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렇게 캐나다로 가서 모든 것을 잊고 살고 싶었다. 아버지도 아들이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열심히 영어 공부에 매달렸는지 아버지도 알고 있었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자퇴가 나에게 영원한 갈증을 준 것 같다. 군에서 영어 공부를 하면서 많은 희망을 꿈꾸었다. 토익이나 어학 성적에 집착하기보다는 회화를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군사 영어반이라는 6개월의 교육 기간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을 지속해서 살고 싶었다. 그 시간으로 인해 교육을 마치는 순간에 유학 휴직이라는 중대한 결심을 할 수 있었다. 군 생활에는 치명적인 결정이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영어 회화를 하면서 자유를 느꼈다.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할 때면 또 다른 나의 인격이 대화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회에서 그동안 하지 못한 말들을 해도 될 것만 같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할 수 있는 특권이 생긴 그런 새로운 발견이었다.


유학 휴직은 무급이기 때문에 저렴한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기로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에 가는 것이었다. 주변 친척 누나들은 이런 몸부림이 가여웠는지 출국 전에 몰래 용돈을 챙겨 주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다. 잘 다녀오라는 말도 어디로 가냐는 질문도 없었다. 모든 결정과 책임은 언제나처럼 나에게 있었다. 출국 하루 전날, 여러 가지 준비로 정신이 없는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아버지였다.


“아들, 아빠가 신발 사 줄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안 그래도 어제 하나 샀어요.”


알았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으셨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어릴 적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족들은 손을 붙잡고 운동화 매장으로 갔다. 스포츠 브랜드 매장이 일렬로 있는 대학가였다. 그때마다 항상 설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아버지는 항상 비싸고 좋은 신발을 사주셨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신발에 집착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돈을 주면 내가 알아서 사겠다고 제안을 하면서 가족들의 신발 나들이는 끝이 났다.

아버지가 그토록 신발에 집착하셨던 이유에 대해 어머니께 여쭤봤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신발에 집착한 거예요?”

“그건 네 아버지가 신발이 좋아야 꽃길을 걸을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란다.”


아버지가 어릴 때 좋은 신발을 신고 다니는 주변 사람들이 부러웠다고 어머니께 말했다고 한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서 유학 전날에 전화해서 신발을 사 주겠다고 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한심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아쉬움과 후회로 돌아왔다. 그때 아버지 전화를 받았을 때 신발을 사달라고 해야 했다.



가족 여행 이후에 아버지의 몸 상태는 좋아 보였다. 간암 항암 치료 그리고 뇌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상태였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지 벌써 7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의사 선생님이 절대 2년은 넘기지 못할 거라고 말했을 그때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충분히 아버지를 용서하고 보낼 준비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를 보내는 시간에 ‘충분’이라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리고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언제나 뒤늦은 후회를 하지만 시간은 절대 되돌아오지 않는다. 우리 가족들은 후회 속에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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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goo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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