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라는 말이 그렇게 아름답게 들릴 줄은 몰랐다. 무한잉크 프린터가 매번 고장 나도록 인쇄를 하면서 일을 했다. 총을 들고 싸워야 하는 군인이지만 장군부터 훈련병까지 전쟁경험이 전혀없는 조직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모든 결과물이 인쇄물로 대처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끔 프런터가 고장 나면 다른 곳에서 가서 사정을 하고 인쇄를 해서 제출하기 바빴다.
그런데 모든 퇴고 작업을 마치고 수많은 고민들 포함한 결과물이 인쇄소로 갔다는 말을 듣자 나는 상당히 흥분되었다. "아........ 이런 감정에 중독돼서 작가분들이 여러 권의 책을 쓰나 보다."라고 생각이 들면서 이제 수정이 불가능하는 생각에 무슨 실수라도 한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여러 가지 나쁜 일들이 몰려와서 어쩔 수 없이 육아휴직을 했다. 만약에 책을 쓰겠다는 결심을 실행을 옮기지 않았다면 부끄럽지 않게 시간을 활용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무엇인가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육아를 하고 집안일을 처리하면서 나를 돌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꾸릴수 있었다. 그리고 원고를 쓰고 출판 방식에 대한 고민을 시작으로 수많은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내 삶에 지속되리라는 확신은 불안정한 미래와 나이를 먹으면 할 일을 잃어갈 불안감까지도 말끔히 씻어주었다.
나이를 떠나서 무엇인가 지속 가능한 의미 있는 취미를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짧은 인생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아름답고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경험을 간직하고도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중년 어른들을 보게 된다. 젊었을 때는 분명 취미도 있었을 것이고 무엇인가를 위해 열정적으로 시간을 투자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체 기능저하는 그런 것들을 우리 삶에서 빼앗가기 일수이다. 반면에 책을 쓴다는 것은 최소의 육체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지속 가능한 취미생활이 될 수도 있고 나이와 무관하게 소중한 자신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보잘것없는 사람> 에세이를 쓰면서 나는 걷는 순간에도, 운전을 할 때도,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도 책에 대한 구절과 내용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아마도 책을 쓰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단편으로 하나씩 글을 올리는 것보다 몇 십배의 생각과 시간이 필요했다. 가끔은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런 열정과 관심으로 조금씩 좋아지고 다듬어지는 책을 보면서 느낀 성취감은 중독적이었다.
책표지가 최종 결정되고 페이스북에 지인들에게 출간 예정이라고 책 소식을 전했다. 처음에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부끄럽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에세이를 보고 부모님과 가정사에 대해서 뒷말을 남기고 다닐까 봐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홍보의 차원을 떠나서 알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너무 엉뚱한 짓을 많이 해서 "역시"라고 반응하는 사람도 있었고, 책까지 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면서 당혹스러움을 표현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페북에 올린 것이 후회되지는 않았다.
나의 과거를 부끄러워한다면 나의 현재도 당당하지 못하다고 인정하게 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런 부끄러움 조차 책을 쓰는 사람이 경험해야 하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한 번에 최고의 책을 써서 대박을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에게 출간이라 삶의 작은 일부가 될 것이기에 이번 책을 발판으로 독자분들에게 천천히 다가서 보려고 한다.
지금 이 시간에 잉크 냄새와 반복되는 기계소리 속에서 따뜻하게 인쇄되고 있을 것이다.
비록은 책 제목은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책을 보는 모든 이들은 <가장 의미 있는 사람>이 되는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다.